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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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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후군

등록 2014-12-09 15:1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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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그녀에겐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율신경계에 이상을 일으켜 우스꽝스럽게 계속해서 딸꾹질을 해대는 것이다. 보는 사람조차 안쓰럽게 만드는 그녀의 폭풍 딸꾹질은 자신이 입으로 내뱉은 거짓말을 스스로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멈춘다. 이름하여 ‘피노키오 증후군’이란다.
현실의 그녀도 꽤나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향한 비판적 목소리를 유독 견뎌내지 못한다. 이유 없이 악의적으로 트집을 잡거나 해코지를 하려는 의도로만 받아들인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다. 예외는 없다.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피해자’요, 상대방은 단연코 ‘가해자’다. 때론, 자신을 비판하는 건 곧 국가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식의 극단적 단순화를 통해 판도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일단은 상대방의 나쁜 의도를 걸고넘어지며 남 탓을 하되,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싶으면 슬그머니 국가라는 방패막이 뒤로 숨어버린다. 단순하면서도 일관된, 초현실주의 행위 패턴이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정국 한파가 일주일 넘게 몰아치고 있다.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실태를 보여주는 증거자료와 증언이 잇따르고,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벌이는 생생한 권력 다툼의 맨얼굴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 자신이 특정인을 ‘나쁜 사람’이라 낙인찍으며 국정 농단의 한복판에 공조한 정황도 있다. 궁지에 내몰린 청와대는 불법적인 ‘문건 유출’ 문제로 단순화하려 애쓰고 있으나, 이미 임계치는 가뿐히 넘어서는 분위기다.
현 정부 집권 2년차에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는 난맥상은 과거 정부에서 나타났던 측근 비리 양상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대통령을 등에 업은 측근 인사들이 각종 이권을 챙기거나 비리에 개입한 흔적은 비교적 옅은 편이다. 대신 우리 사회는 공적 시스템 붕괴라는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아니, 애초부터 공적 시스템이란 개념조차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박혀 있지 않았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다.
피노키오 증후군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단다. 딸꾹질에 시달리는 드라마 속 그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 속 그녀의 존재감은 그 누구보다 막강하다. 그녀의 초현실주의 캐릭터에 어떤 증후군이란 딱지를 붙이건 간에, 지금 그녀는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무섭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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