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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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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등록 2011-09-06 08:44 수정 2020-05-02 19:26

추석이 다가왔네요. 도처에 흩어져 지내온 가족들이 고향 부모님 집에 모이겠지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고, 한데 모여 앉아 송편도 먹겠지요. 냉혹한 세상에 상처받은 심장에도 더운 피가 돌면 좋겠네요. 추석엔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죠. ‘뻥’ 아니에요. 국토해양부는 매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수십 쪽 분량의 ‘관계기관 합동 특별교통대책’이라는 자료를 내놓는데, 지난해 걸 보면 ‘특별교통대책기간(9일간) 전국 예상이동인원’은 4949만 명이었거든요. 올핸 연휴가 짧은데 얼마나 이동할까요? 북녘에서도 1988년부터 추석이 휴무일이긴 한데, 전국적인 귀성 행렬은 없다네요. 남녘에선 추석 당일만 쉬다가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부터 이틀 연휴로 바뀌었고, 서울올림픽 다음해인 89년부턴 연휴가 사흘로 길어졌죠.
다른 나라에도 한국의 추석에 견줄 만한 명절이 없지는 않다네요. 일본에는 양력 8월15일을 전후한 ‘오봉’ 연휴가 있지요. 정식 휴일은 아니지만 통상 3~5일을 쉰대요. 중국에는 음력 8월15일 추석이 있긴 한데 우리의 설인 춘절 때의 열기와 비할 바가 못 되고, 전국적인 귀성 행렬도 없다네요. 오히려 11월 넷째 목요일에 시작하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가 한국의 추석에 견줄 만한 거 같아요. 귀성 인파가 3천만~3500만 명, 그러니까 미국인 8명에 1명꼴이라네요. 이 기간에 칠면조 4500만여 마리가 ‘대학살’을 당해, 애도(?)의 표시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칠면조 1마리를 놓아준다네요.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 가운데 반수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 때 보살펴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3일간 축제를 벌인 1621년부터 시작됐다죠. 그 뒤 인디언들의 운명을 보면, 세상사 참 각박하죠?
예로부터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불린 추석은 한 해의 노고와 결실을 갈무리하는 가을의 정점(한가위)을 기리는 농경사회의 풍습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래서인지 추석 하면 귀성 행렬만 떠올리는데, 요즘은 귀경 인파도 만만치 않아요. 고향의 어르신들이 자식·손주를 보러 대도시 나들이에 나서는 경우도 많지요. 수도권 집중과 전 국토의 도시화로 농촌·농업이 쇠락한 결과겠지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농가인구는 1970년 1442만2천 명에서 2009년 311만7천 명으로 무려 78.4%가 줄었어요. 도시화가 격해질수록 더 뜨거워지는 ‘민족 대이동’은, 삶의 뿌리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애타는 몸부림처럼 느껴져요. 일상이 아무리 팍팍해도, 귀성길이 아무리 고단해도,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거처가 아닐까요?
이 가을, 고향에 가지도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전쟁과 분단의 상흔을 온몸으로 견뎌온 이산가족들이 그렇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땐 한 해 두 차례꼴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선 2009년과 지난해 추석 계기 상봉 두 차례뿐이었죠. 올핸 그나마도 없어 참 허전하네요.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의 처지도 매한가지죠. 정부 통계를 보면, 국내 거주 등록외국인은 91만9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1.9%나 돼요. 결혼이민자는 15만4천여 명(2009년 기준)으로, 국제결혼 비율이 11.0%이고요.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더하면 그 수는 수백만을 헤아릴 거예요. 한국인의 추석 열기만큼 그분들의 타향살이 설움도 깊어지겠죠.
그래도 둥근 보름달만 봐도 배가 부른 한가위 아닌가요? 애니메이션 영화 에서 동료 동물들이 주인공 사자인 심바를 격려할 때 한 말처럼, 서로에게 덕담 한마디씩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말이죠. “하쿠나 마타타!”(괜찮아 모두 잘될 거야!)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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