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엔 섬이 많다. 정부 통계를 보면, 한국엔 무인도를 포함해 3170~3358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기준에 따라 숫자가 다르지만 어쨌거나 많다. 삼면이 바다여서 그럴 거다. 섬은 바다에 홀로 떠 있으니. 물리적 실체로서 섬은, 바다에 기대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섬은, 경쟁에 지친 이들이 찾아드는 어머니 품이기도 하다. 시인 안도현이 그의 시 ‘섬’에서 말했듯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존재이기도 하다. 바다의 섬은 그래서 너른 품과 강인한 생의 의지의 표상이기도 하다. 한국은 ‘섬나라’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데다, 북쪽으론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어 대륙으로 갈 수 없다. 일제 치하 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를 피해 열차를 타고 대륙으로 갔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대륙으로 가는 열차가 없다. 그러므로 섬은 바다에만 있지 않다. ‘고립된 존재’가 바로 섬이다.
당신은 섬인가 육지인가.
여기, 사람들이 사는 육지에서 바다로 떠밀려 섬이 되어가는 이들이 있다. 김진숙과 ‘영도의 8인’. 김진숙은 지상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라 180일 가까이 ‘고공농성’ 중이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8인도 김진숙과 함께 85호 크레인에 있다. 자본과 행정부와 사법부의 삼각 공세에 밀려, 비바람 내리치는 크레인에서 그들은 ‘하늘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 ‘신의 거처’라는 명동성당. 그 바로 옆 ‘카페 마리’에도 대자본의 재개발사업에 밀려 생계의 터전을 잃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섬처럼 고립돼 농성 중이다. ‘용역’이라 불리는 깡패들의 난동이 두렵지만 그곳을 뜨지 못한다. 보상비 몇백만원으로는 장사할 곳을 찾을 수 없으니, 그냥 그곳에서 장사하며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제주도 서귀포의 강정마을 사람들도 느닷없는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싸우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살기 좋다고 해서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려온 고향마을에서 계속 살게 해달라고. 제주도에 주한미군이 이용할 해군기지를 만들어 중국의 견제를 자초하려는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에게 무엇일까? 밤에는 남들처럼 자고 싶다며 24시간 맞교대제를 주간 교대제로 바꾸자고 요구했다가 봉변을 당하고 있는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노동자들, 자본의 모르쇠에 지친 조합원과 가족 15명이 자살한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당신 곁에 섬이 너무도 많다.
누군들 고립이 두렵지 않을까. 고립을 피하는 길이 있다. 그런데 갈림길이다. 하나는 고립을 피해 경쟁하는 길이다. 경쟁에서 이기면 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본주의체제가 요구하는 길이자, 우리들 다수가 따르는 길이다. 섬에 갇힌 이들과 함께할 수는 없다. 경쟁은 고립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 다른 길이 있다. 고립을 피해 연대하는 길이다.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길이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가시밭길이다. 그래서 우리들 다수는 두 눈 질끈 감고 이 길을 외면한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비겁에 익숙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고립이 있으면 연대도 있는 법. 비록 소수일지라도. 지난 6월11일에 이어 7월9일 부산 영도 85호 크레인으로 185대의 ‘희망 버스’를 몰고 가려는 이들, 7월1~2일 인천에서 제주 강정마을까지 ‘평화크루즈’를 타고 바다를 건넌 이들, 쌍용차 해고노동자 자녀들의 누이가 된 가수 박혜경,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치유에 전심전력하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 카페 마리로 모여든 이름 모를 시민들.
장맛비 몰아치는 이 밤,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원한다. ‘섬’이 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가족과 나눌 따뜻한 밥 한 끼를. 그리고 다시 읽는다. 정현종의 시 ‘섬’을.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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