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학개혁 거짓말 그리고 김문기

등록 2011-06-21 16:12 수정 2020-05-03 04:26

‘그들’은 영악하다. 많이 배워 훈련된 머리로 시민의 판단을 흐릴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첫 시도 이후 온 나라에 ‘무상급식’ 바람이 들불처럼 번지자, ‘그들’은 “부자 자식들한테까지 국민 세금으로 공짜밥을 줘야 하나”라고 맞받았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논리엔 부모가 부자여서 돈 내고 점심을 먹는 친구 옆에서, ‘공짜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어린 학생의 가슴에 맺힐 피멍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인권 감수성이 없다. ‘글로벌 코리아’를 운위하는 대한민국에서 무상급식은 전근대적 시혜인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다져야 할 정부의 책무인가? 지난 6월16일 서울지역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청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된 무상급식을 없애진 못할 거다. 가난한 이들의 염원에 많은 중산층 학부형이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고액 등록금’ 문제도 ‘그들’은 무상급식 논쟁 때와 똑같은 수법으로 물을 타려 한다. ‘반값 등록금’ 요구가 봇물을 이루자, “지금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부실 사립대학에 좋은 일만 시키는 거다. 구조조정이 먼저다”라고 맞받는다. 이 또한 그럴듯하지 않은가. 사학에 문제가 많다는 건, 옆집 강아지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2005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한 사립학교법 개정을, 서울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와 시위를 벌여 무산시킨 당사자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그들’이었다. 덕분에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해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최소한의 장치인 개방이사제 도입 등도 물 건너갔다. 2011년 6월,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부실 사학과 비리 사학은 샴쌍둥이다. 그런데 ‘그들’은 부실 사학에 대해서만 입에 거품을 물 뿐, 비리 사학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않는다.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 논란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조급하게 하지 말고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대안을 마련하라.”(6월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어떻게 반값이 되나.”(6월17일 장·차관 국정토론회) 공무원들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린다. ‘반값 등록금 정책 대안을 내놓지 말란 말이야.’
‘그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기 ‘그들’의 진의를 가늠할 또 하나의 리트머스시험지가 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상지대 문제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자. 1978~93년 상지대에서는 이사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당시 이사장 김문기씨가 맘대로 했다. 김씨는 1993년 공금횡령과 부정입학 혐의로 구속됐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학 비리의 대명사’다. 김씨가 물러난 뒤 상지대는 십수 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내실을 다지며 학교의 위상을 높여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소속 행정위원회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에 걸쳐 김문기 이사장 일가의 상지대 복귀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김씨 일가의 비리는 현재진행형이다. 드러난 범법 사실만 해도 벌써 두 건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김씨가 은행장이고 그 아들 성남씨가 부행장이던 강원상호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벌여 경비 부당 지출 등 불법 사례를 적발해 3억206만원을 회수 조처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월19일 김씨와 그 아들 성남씨를 여야 국회의원 등 16명에게 불법 정치자금 69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쯤 되면 김씨 일가의 상지대 복귀를 허용한 사분위 결정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고, 개인 차원의 비리’라며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상지대 교수와 학생들은 ‘김문기씨 구속 수사와 김씨 추천 이사 4인 퇴진’ 등을 요구하며 643일째(6월17일 현재) 교내 농성 중이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면, 시민이 나서 국회와 정부를 움직이는 방법뿐일 터이다. 사학 비리, 정치자금 비리, 저축은행 비리 등 ‘비리 3관왕’에 오른 김문기씨는 상지대로 갈까, 아니면 감옥으로 다시 가게 될까?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