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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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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억

등록 2011-05-17 15:52 수정 2020-05-0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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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심복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반장은 하루 종일 울었다. 철없던 중학 2년생이던 나는 ‘대통령이 죽었는데 반장이 왜 우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다들 울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죽었을 때 북녘 사람들도 대성통곡을 했다.

그에겐 이름이 셋 있다. 박정희. 대한민국 국민이 기억하는 이름이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일제 때 이름이다. 그는 히로히토 천황이 다스리던 그 나라에 ‘一死奉公’(한 목숨 다 바쳐 충성함)을 맹세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5·6·7·8·9대 대통령 노릇을 했다. 5·16 쿠데타부터 치자면 18년5개월간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였다. 그는 두 개의 낱말로 기억된다. 독재와 경제성장. 전자가 유신체제와 긴급조치 9호로 상징된다면, 후자는 ‘한강의 기적’이나 ‘쓰레기더미 위에 피어난 장미’로 불린다.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은 이 두 낱말 사이에서 떠돈다. 누군 찬양하고 누군 증오한다. ‘토건 중심의 돌진적 성장전략’을 핵으로 한 박정희 모델·체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웅변하듯, 지금도 대한민국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는 이렇게 오늘을 산다. 그는 어떤 리더였나. 그가 5·16 쿠데타 한 달 뒤인 1961년 6월16일 펴낸 소책자 ‘지도자도(指導者道)-혁명과정에 처하여’를 보면, ‘현대의 지도자’란 “특권계급이 아니라 대중과 동고동락하면서도 일보 앞서 걷는 동지”이자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와 같은 비상사태”에 처해서는 자기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의사와 같은 자다. 그런데 대중과 일체감을 중시하는 엘리트주의자였던 그의 눈에 대한민국은 집권 기간 내내 ‘비상사태’였다. 그는 밀짚모자를 쓰고 논두렁에 앉아 농부들과 농주를 마셨고, 반대자들은 가차 없이 죽이거나 감옥에 처넣었다. 박정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자 고 전인권은 그를 “몰(沒)민주주의자, 무(無)민주주의자”로 평가했다(·이학사). 2011년 대한민국 국민 가운덴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그를 꼽는 이가 가장 많다. 그의 큰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각종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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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어서 산 사람이 됐다. 슬픈 운명이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편법이 아닌 대의를 좇아 지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돌쇠형 정치 행보로 ‘바보’라 불린, ‘노사모’라는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하여 사랑이 정치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예외적 정치인.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 등으로 지지층의 분열을 낳으며 ‘진보와 개혁을 망친 자’라는 저주를 한 몸에 받은 대통령. 퇴락하는 고향 농촌마을에 정착해 ‘사람 사는 세상’을 가꾸려 한 시민. 후임 대통령의 ‘뜨거운 관심’에 시달리다, 지지자들에게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곤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낙화가 된 퇴임 대통령. 2011년 5월, 대한민국의 장삼이사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나선 봄나들이 길에 그의 고향 봉하에 들른다. 그의 묘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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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50년, 5·18 광주항쟁 31돌,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가 한 주를 사이로 이어진다.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에서도 각별히 숨가빴던 순간을 기억해야 할 시기다. 은 노 전 대통령 2주기와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특별 여론조사를 벌였다. 질문 항목엔 ‘역대 정부 평가’도 있다. 예상대로! 박정희 정부가 45.2%로 1위.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각각 19.5%와 18.0%로 2·3위였다. ‘역대 정부 평가 1·2순위’ 합산에서도 박정희 정부가 57.5%로 1위,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각각 40.1%와 33.6%로 2·3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대목이 있다. 연령별로 보면 50대 이상에선 박정희 정부가 압도적 1위인 반면 20~30대에선 노무현 정부가 1위였다. 이 조사 결과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늘을 어제로 기억할 내일의 대한민국 시민들의 선택은 어떠할까? 기억의 정치는 오늘도 계속된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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