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시즌즈-이영지의 레인보우’ 마지막 회. 한국방송 ‘더 시즌즈’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25년 2월21일, 한국방송(KBS) 음악프로그램 ‘더 시즌즈-이영지의 레인보우’(이하 ‘레인보우’)가 종영했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1.1%로 집계됐다. ‘레인보우’의 시청률은 방영 기간 0.7%에서 1.1% 사이로 평균 1%대를 밑돌았는데, 말이 없는 숫자는 ‘요즘 음악 프로그램을 누가 보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2022년의 KBS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13년3개월간 총 600회차를 방영하고도 다소 긴급히 종영 수순을 맞아야 했던 상황에서 심야 음악 쇼의 계보를 이어나갈 방식을 고민했고, 이듬해 ‘더 시즌즈’를 내놓았다. 말 그대로 계절 단위로 새로운 진행자가 바통을 이어받는 방식이었다. 박재범, 최정훈, 악동뮤지션, 이효리, 지코까지 엠시(MC)라는 이름의 이어달리기 주자들은 매번 기대감을 조성했지만, 다섯 시즌 연속 ‘더 시즌즈’ 평균 시청률은 1%대에 그쳤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최고 시청률이 4%대 후반에 달했다는 기록은 KBS에 계속해서 ‘굴욕’을 만들어냈다. 과연 이영지가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진 건 온당했다.
제작진이 여섯 번째 시즌의 호스트로 이영지를 섭외한 이유는 분명했다. 2019년 엠넷 경연프로그램 ‘고등래퍼 3’의 우승자로 이름을 알린 그가 스스로 개척해나가며 일군 ‘영향력’ 때문이었다. 이영지는 유튜브 토크쇼에서 자신을 “쌩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 소개하지만, 이는 지나친 겸양이다. 어느 누가 예능 프로그램 촬영차 향한 인도네시아 발리 공항 입국 심사에서 자신의 직업을 “케이컬처 프레지던트”(K-Culture President·한국 문화 대통령)라 소개할 수 있겠는가? 그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를 수는 없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515만 명, 엑스 팔로어 124만 명, 유튜브 구독자 148만 명으로 누적 787만 명과 실시간 접점을 만들어낸 그는 관심이 화폐가 되는 관심 경제의 부르주아다. ‘레인보우’ 게스트인 백예린의 말을 빌리자면 이영지는 “말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릴스도 잘하고, 광고도 잘 찍”는다. 한마디로 대중은 어디서나 이영지를 볼 수 있는데,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공영방송에서도 그를 보게 됐을 뿐이다.
‘더 시즌즈’ 제작진은 한 계절이 마치 조직 생활에서 통용되는 수습 3개월처럼 어떤 성과를 증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시간임을 인정하듯, 이영지에게 이례적으로 5개월의 시간을 허용했다. 2025년 기준으로 이영지가 ‘더 시즌즈’ 역대 최장수 MC가 됐다는 건, 프로그램의 시청률 답보 상태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진행자만 바뀔 뿐 연출 및 구성상 변화가 없었다는 지적에 음악 방송 존폐론이 포개질 때, 제작진은 이영지를 통해 시대의 공기를 읽었다.
그는 아이돌 게스트의 댄스 챌린지 안무를 현장에서 거의 완벽하게 익혀서 선보였고, 이는 프로그램 방영 전후로 KBS 공식 계정에 업로드될 수많은 쇼츠 콘텐츠의 토대가 됐다. 이영지는 타샤니의 ‘경고’, 리조의 ‘주스’(Juice), 질 스콧의 ‘어 롱 워크’(A Long Walk)를 각각 코미디언 이은지, 세븐틴 승관, 백예린과 재해석한 커버 무대를 펼쳤다. 데뷔 이래 피처링으로 참여한 타 아티스트의 곡만 수십 곡에 이르는 이영지의 협업 내공이 십분 발휘된 무대들이다. 마지막 회에서 이영지는 ‘더 시즌즈’의 본질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청률이 대답해줄 수 없는 결과다. ‘레인보우’는 이미 지나간 계절이 됐지만, 그렇게 우리는 음악의 세계 안에서 다가올 다음 계절을 기꺼이 기다린다.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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