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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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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노동자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등록 2011-04-13 10:48 수정 2020-05-03 04:26

그래도 봄은 왔다. 바람은 여전히 맵차지만 한낮의 햇볕은 따스하다. 아파트 단지 안 목련이 꽃을 피웠다. 목련꽃은 그 느닷없음으로 필 때 황홀하고 질 때 처절하다. 산수유도 살포시 꽃을 내밀었다. 수줍고 여리지만 오래 버틴다. 한강변 응봉산엔 개나리가 노란 꽃밭을 펼쳐 보인다. 당당하고 강렬하다.
꽃이 피어야 마침내 봄인가? 아니다. 대지와 나무에 첫사랑의 설렘처럼 물이 오른다. 긴 겨울 끝, 봄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물의 흐름과 함께 꽃보다 먼저 온다. 생명은 시리게 눈부시다.
그러나 이 봄은 두렵다. 침묵의 봄이다. 옆 나라 일본의 지진해일 이후 원전 사고의 여파가 어찌될지 사람들은 전전긍긍이다. 산천은 지난겨울 산 채로 땅속에 묻힌 소 15만 마리와 돼지 340만 마리의 저주에 휘청일 것이다. 온 나라 4234곳(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실 자료) ‘묻지마 매몰지’는 핏빛 침출수의 보복을 예고한다. 언 땅이 다 녹으면 미구에 현실이 될 것이다. 산 사람을 땅에 묻으면 생매장 살인이 되고, 산 소·돼지를 묻으면 ‘살처분 작업’이란다. 산 사람한테 전기충격을 주면 고문이고, 산 쥐와 토끼한테 전기충격을 가하면 ‘실험’이란다. 우리는 아직 이런 세상에 산다.
그러면 사람끼리라도 사이좋게 지내나. 그렇지도 않다. 봄이라고 다 같은 봄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봄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적막한 외로움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조선소인 부산 영도조선소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는 김진숙(52)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홀로 있다. 1월6일 올라갔으니, 100일이 다 되어간다. 8년 전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을 하다 세상의 무관심에 밀려 스스로 목을 맨 곳이다. 스물여섯에 일터에서 쫓겨난, 대한민국 최장기 해고노동자인 김 지도위원은 “살아서 내려갈 것”이라며 “함께 사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라고 묻는다. 뭐라 답해야 하나.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 천안공장에서 일하다 세상을 뜬 고 김주현(25)씨는 지금 일터 근처 병원의 차가운 안치실에 누워 있다. 극심한 피부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월11일 기숙사 13층 복도 난간에 올라 몸을 던졌으니, 역시 100일이 다 되어간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가족에게 보낸 “엄마·아빠·누나 힘내시구,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다. 죄송하다니…. 쌍용차에선 2009년 회사의 정리해고 단행 이후 지금껏 14명의 노동자·가족이 자살 등으로 세상을 등졌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울산 비정규직지회 등 일터와 자존을 지키려고 온몸으로 버티는 숱한 노동자를 고개만 돌리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고립됐고, ‘우리’는 침묵한다. 무관심과 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 소수 대기업은 매출과 영업이익의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연봉 수십억원을 자랑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의 현대판 영웅담도 이젠 낯설지 않다.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 61.3%에서 2010년 59.2%로 뚝 떨어졌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의 몫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땅의 숱한 젊은이들에겐 그 험한 노동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2011년 봄, 대한민국의 노동과 자본의 불균형은 불길하다.
노동과 자본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는 내내 김춘수의 시 ‘꽃’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후략).”
세상의 수많은 ‘나’를 꽃이라 불러줄 이, 그리하여 ‘내’게도 긴 겨울 뒤 봄을 안겨줄 이, 누구인가?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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