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님 반갑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궁금증을 품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간질간질한 궁금증을 같이 긁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말씀하신 797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필자를 찾았습니다. 정혁준 기자더군요. 정기구독자라면 지난 3월까지 경제팀장을 맡았던 정 기자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경제부로 옮겨가 일하고 있습니다. 전화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홍씨를 끌어들였는지 물었습니다.
“‘ㄱ씨’나 ‘ㄴ씨’로 쓰면 딱딱하지 않겠나.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사례를 들어 진짜 이름을 쓰는 거겠지만, 차선책으로 독자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을 쓰는 것이 읽기도 쉽고 부드럽다고 봤다.”
그럼 임꺽정이나 성춘향, 이몽룡, 연놀부 같은 가공인물이나 이순신, 김유신 등 역사인물은? “음… 홍길동의 서민적인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양반집 자제지만 서민을 위해 싸웠잖아?”
‘그럼 왜 전우치와 임꺽정, 홍경래는?’이라고 물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 기자가 “마감이지? 바쁘겠네”라며 기자가 말을 더 걸기도 전에 성급히 전화를 끊었기 때문입니다.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공식 문서를 관리하는 행정안전부에 전화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지식제도과 박병준 팀장은 “관청이 민원 신청 서식에서 특정 이름을 써야 한다는 지침이나 규정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성군은 이 지역에 홍길동의 생가 터가 있다며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문경배 황룡면 총무계장은 “1993년 공직 생활을 시작할 때도 서식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썼다”라며 “30년 이상 근무한 분에게 물어봐도 언제부터 그 이름을 썼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을 쓰면 후손에게서 항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을 쓰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황룡면사무소에서는 과거에 남·여용 신청서식을 따로 둬서 ‘홍길순’이라는 이름도 등장했다고 문 계장은 덧붙였습니다.
다른 관청은 어떨까요. 서울시 중랑구 망우3동 주민센터에도 연락했습니다. 최장호 행정민원팀장은 “1985년 공직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봤다”며 기원은 역시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 팀장은 “가공 이름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민원인이 예시를 그대로 베껴쓰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최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홍길동이 관청에서 항상 터줏대감 자리에 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과거에 동네 병원이나 약국에서 홍보용으로 민원신청 서식을 만들어서 동사무소에 내건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는 가끔 이몽룡이나 성춘향이 등장하기도 했다는군요.
얘기를 종합하면, ‘홍길동’은 다음 네 가지 조건을 무사히 통과한 ‘귀한’ 이름입니다. 1. 누구나 다 알아야 할 것. 2. 실존 이름과 헷갈리지 않는 ‘가공인물’ 이름일 것. 3. 후손의 항의를 받지 않도록 역사 속 인물은 피할 것. 4. 정서적 거부감 없이 좋은 이미지를 가질 것.
참고로 미국에서는 신원미상의 남자와 여자를 칭할 때, ‘존 도’(John Doe) 혹은 ‘제인 도’(Jane Doe)라는 다소 심심한 이름을 씁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전국 주민센터마다 의적이 뛰놀고 있는 우리나라가 좀더 낫지 않나 생각됩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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