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답변은 상징인류학의 권위자인 김광억 교수(서울대 인류학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가 처음 시위를 하면서 삭발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는 부모로부터 받은 터럭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895년 고종 때 단발령이 공포되자 목숨을 던져 항거한 이들도 있었지요. 예외적인 경우가 불교의 승려였습니다. 승려의 삭발은 속세를 등지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유교 전통에 어긋나는 삭발이 널리 퍼진 시기는 일제 때입니다. 감옥·군대·학교가 삭발을 했죠. 이때의 삭발은 강요된 것입니다. 이전에 속했던 공동체와의 단절, 격리를 뜻합니다. 개인을 버리고 국가, 군대, 군대 같은 학교에 복무하라고 강요받았지요.
승려와 군인, 뿌리는 다르지만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버림, 비움, 죽음이라는 상징입니다. 삭발 시위로도 이어집니다. 시위는 항거의 몸짓 아닙니까. 부당한 것에 저항하고 바꾸기 위해 시위를 합니다. 자기를 버릴 때, 욕망을 비울 때 힘이 세집니다. 삭발은 단식과 함께 시위 효과를 높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면서 바깥으로 결사항전의 투지를 드러내 보이는 거지요.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서구 선진국에서 삭발 시위는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그 나라들에 목숨 걸고 싸울 정도의 일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비등점에 오르기 전에 소통하는 비법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양에서도 수도자들이 삭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요된 삭발의 역사도 있지요. 가까이는 2차 대전 시기 나치가 수감자들의 머리를 삭발했고, 전쟁 이후에는 나치에 부역했던 이들이 그들 나라에서 삭발을 당했습니다. 공동체에서의 추방을 의미합니다.
‘착한’ 시위대들이 축제처럼 즐기는 시위를 많이 하는 반면, 극우 성향의 유럽 스킨헤드족,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삭발을 하고 몰려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렬한 시위 효과를 노린다는 점에서는 이들의 삭발도 삭발 시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좀 폭력적이지요.
네이버 지식iN을 보면 “왜 삭발 시위를 하느냐”는 질문에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답변도 있습니다. 삭발 시위가 원래는 아주 심각한 상징 행위인데 이제는 간혹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흔해졌기 때문이지요. 너도나도 깎아대면 좀 거시기하지요.
이런 탓인지 삭발 시위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가장 최근 눈에 띄는 삭발 시위는 자유선진당이더군요.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고 원안을 사수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서 저도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보통 삭발 시위를 하면 대장부터 깎게 마련인데 이날 이회창 총재는 뒷줄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계시더군요. 이 총재한테 직접 물어봐야 하나요,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물어볼까요?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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