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살 헤일리 로메로가 2025년 3월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인근 일립스 공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에서 시위대가 들고 있는 거대한 우크라이나 국기 아래에 서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50여 일 만에 세계가 전선 앞으로 떠밀리고 있다. 세상 모든 사안을 돈벌이로 판단하는 미국의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이 유럽 전체를 넘어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는 관건이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관련 기사: 우크라이나 희토류는 트럼프의 묘수일까 악수일까) 심지어 미국 국방장관은 2025년 2월12일 ‘우크라이나의 2014년 이전 영토 수복 불가’를 선언했다. 러시아가 2014년 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강탈했는데, 이 지역을 포기하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와 부통령 제이디 밴스가 2월28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굴복을 요구하고 모욕을 준 장면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러시아 세력권’으로 인정하는 미래까지 가늠케 하는 일이었다.
독재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날개를 단 형국이다. 사실 푸틴의 관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아니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저 서구, 그리고 서구의 세력권에 편입하려는 젤렌스키 정부에 맞서 러시아 세력권 내부의 평화를 유지하는 ‘특별 군사 작전’일 뿐이다. 러시아가 2014년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중재로 합의한 ‘우크라이나와의 전투행위 즉각 중단’ 등을 담은 ‘민스크 의정서(민스크1)’, 2015년 프랑스·독일과 같은 내용의 즉각 이행을 합의한 ‘민스크2’,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인 2019년 합의한 휴전안을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것 역시 푸틴의 이런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비롯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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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2022년 2월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롯이 러시아와 푸틴의 책임인데, 트럼프의 미국은 이런 책임을 묻지 않고 러시아 세력권을 중심으로 한 푸틴의 관점을 그대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런 상황을 비판하며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지지는 자유(리버티) 개념을 향한 세계적 투쟁”이라며 “그 자유는 복지국가, 페미니즘, 인권 등과 같은 유럽의 진보적인 유산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 2025년 3월3일 공개한 방송에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과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과 교수,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 등이 출연해 ‘파국으로 끝난 미·우크라 회담… 외교 전문가들의 진단은?’이라는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방송 갈무리
문제는 한국에서 ‘진보’를 자칭하는 일부 인사들이 젤렌스키를 조롱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 : 한국의 진보는 왜 우크라이나를 때리나) 심지어 젤렌스키를 ‘구걸꾼’ 취급 하며 “젤렌스키는 미국의 도움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트럼프나 밴스가 한 말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먼저 ‘강자 선망’ 탓이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강자’가 된 한국이 더는 침략당한 약자의 서사에 감정을 이입할 필요 없이 자국의 이익 관점으로만 전쟁을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다른 이유는 ‘진영논리’다. 대통령 윤석열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에 젤렌스키는 어떤 이유에서든 비판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쟁마저 국익과 진영논리로 바라보는 이런 시선은 사실 푸틴이나 트럼프의 극우적 관점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이기면 되고, 그저 돈을 벌면 되고, 그저 정적에 반대하면 그만인 것이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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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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