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3월1일 서울 중구 숭의여대에서 제106주년 3·1절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저물녘,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된다. 사위는 포근하면서도 오싹하다. 윤석열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3월의 초중순은 ‘개와 늑대의 시간’을 닮았다.
무려 경찰 출신 현역 국회의원이 공개 집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와 헌법재판소를 때려부수자고 선동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아 위헌 결정을 받아놓고도 뚜렷한 이유 없이 내처 뭉갠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그간 여야 합의가 헌정 질서보다 우선이라고 우겨왔는데, 좌고우면의 상징으로 역사에 이름이 남지 싶다. 이러다 윤석열 탄핵에 이어질 조기 대선조차 여야 합의가 없어 일정을 공표하지 못하겠다고 뻗대지나 않을지.
국민의힘은 극우에 점령당했다. 광장의 소음과 비정상적 열기가 그대로 옮겨왔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호응하더니 급기야 사전 투표도 없애자고 한다. 조기 대선 언급은 불경이다. 영남만으로 건국까지 할 기세이다. 탄핵 찬성이었던 전직 대표 한동훈은 탄핵 반대 광장 세력에 “미안하고 고맙다”며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엄을 할지 몰라 위험하다더니 그를 막기 위해 이미 계엄을 한 윤석열을 지키자는 이들에게 표를 구걸하나. 정치의 목적이 고작 ‘이재명 타도’인가. 그러고는 돌연 자기는 대통령을 3년만 하겠단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위해서란다. 제 임기를 깎으면 욕심 없이 헌신하는 듯 보이리라 믿는 모양인데 즉흥적이고 얄팍한 자기 중심성에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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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은 나라를 말아먹기에는 충분하지만 바로 세우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3년 뒤인 2028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함께 치르면 우세한 진영이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을 동시에 쥐게 될 공산이 크다. 일방 폭주를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권력 남용을 방지할 개헌안을 모색해왔다. 그 하나인 4년 중임제는 최장 8년 안정적인 권력을 보장하되 선거 주기를 이용해 권력을 견제하는 안이다. 지방선거와 대선을 함께 치러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국회의원 선거로 대통령 4년 임기의 중간평가도 하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평시’의 구상이었다. 윤석열의 난이 종식되지 않아 ‘전시’에 준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이다. 혹여라도 또 다른 미치광이가 나라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계엄 방지’에 초점을 맞춘 개헌 논의가 더 시급하고 절실하지 않나.
간절한 이가 먼저 정신을 차린다. 애를 셋 둔지라 세 배로 더 정신줄 쥔다는 한 친구는 요즘 ‘좋아하지 않아도 지지할 수 있어 훈련’에 매진 중이다. 안 그래도 없는 정 더 떨어질까봐 이재명의 발언은 가능한 한 직접 듣지 않고 텍스트 위주로 본다고 했다. 탄핵은 당연히 인용되고 내란(세력)은 곧 종식되리란 기대가 섣부르고, 이 난리통에 중심을 잡을 세력은 이재명을 밀어올리는 이들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연대든 연합이든 연정이든, 그들과 손잡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면서. 광장의 선동가들에게 마이크와 리더십까지 내준 국민의힘이 역설적으로 이재명으로의 결집을 불러일으킨다.
낡은 것은 갔는데 새것은 오지 않았다. 개헌을 포함한 백가쟁명을 광장이 아니라 국회에서, 정치의 장에서 펼쳐가야 한다. 광장을 비우자. 특히 탄핵의 날만큼은, 한쪽이 어찌해도 다른 쪽만이라도 비우자. 이성 잃은 패악질과 한풀이에는 곁을 주지 말자. 차분하고 냉정해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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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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