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2022년 3월 대선을 열흘 앞두고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보고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매일 실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던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건넨 돈으로 여론조사 비용을 충당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2024년 10월17일 한겨레21이 입수한 녹음 파일과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받은 제보 등을 종합하면, 명씨는 2022년 대선을 열흘 앞두고 있던 2월28일 자신이 운영하는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인 강혜경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매일 (대선) 선거일까지 (여론조사를) 돌린다”며 “공표할 것이 아니니 연령별 가중치를 나중에 주라”고 지시했다. 명씨는 여론조사 실시 비용과 관련해서는 “돈은 모자라면 (미래한국연구소) 소장에게 얘기해서 ㄱ이고, ㄴ이고, ㄷ한테 받아 오면 된다”며 “추가적으로 돈을 받아 오라. 내가 그거(여론조사) 돌린다고 다 공지했다. 돈 달라 해야지”라고 말했다. ㄱ씨, ㄴ씨, ㄷ씨는 당시 2022년 6월로 예정된 제8회 지방선거 경북과 경남 지역에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이들이다.
명씨가 지시한 여론조사는 이후 미래한국연구소를 통해 모두 9차례 실시됐다. 당시 조사들은 ‘대선 면밀 조사’라는 이름의 보고서로 만들어져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됐다. 강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해당 여론조사는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되기 위해 시행된 것”이라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윤석열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말했다. 실제 명씨와 강씨의 통화 녹취에서 명씨는 “저번에 그래프, 연령별 투표율 보여줬죠? 계산한 거 두 개를 만들 수 있나? 윤석열 48%, 백분율 만들면 이재명 42%로 아마 그래 나올 거거든? 하여튼 조사 돌리면서 할 때마다 나한테 좀 얘기를 해줘요”라며 “맨날 윤석열이한테 보고해줘야 돼”라고 말한다.
여론조사 비용과 관련해 당시 사정을 아는 경북 지역의 한 정가 관계자는 한겨레21과 만나 “2021년 11월부터 명태균씨가 ‘김건희 여사에게 말해 공천을 주겠다’고 약속하며(2022년 6월 지방선거) 시의원 출마 예비후보 ㄱ씨, 군수 예비후보 ㄴ씨 등에게 돈을 받아 썼다”며 “2021년 11월부터 수금이 시작됐는데, 현금으로 천만원씩 나눠서 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각각 6천만원씩 모두 1억2천만원을 명씨 쪽에 건넸다고 한다.
명씨는 여론조사 문항도 직접 지시하고 조작을 암시하는 표현도 썼다. 한겨레21이 입수한 통화 녹취록을 보면, 명씨는 강씨에게 전화해 “사전투표할 거냐, 후보 누구냐, 정당 지지율 3개만 물어라”라며 “그 3개만 물어보면 간단하다”고 말한다. 이어 “연령별 가중치 나중에 줘서 하라”며 사후 여론조사 결과 조작을 암시하는 듯한 지시도 내렸다.
명씨가 이렇게 뒷돈까지 받아가며 공표하지도 않을 대선 여론조사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추론하기 위해선 우선 2022년 3월 대선 직전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명씨는 대선 초창기부터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뤄져야 보수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겨루던 경선 국면에서 결과가 조작된 자체 여론조사를 시행했던 명씨는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에 신경 썼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양쪽이 여론조사 숫자를 두고 다투며 불투명해 보였지만, 대선을 6일 앞둔 2022년 3월3일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이를 두고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단순하게 보면, 선거 막판 윤석열 후보가 이긴다는 (여론조사) 결론을 보고해서 (윤석열 후보의) 환심을 산 것일 수 있지만, 명씨가 ‘본인의 그림’을 갖고 기획자처럼 움직여왔단 점을 감안하면 공표되지 않은 여론조사를 통해 윤석열 후보에게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설득하고, 단일화를 해야 이긴다는 점을 알려주려 했을 수 있다”며 “이 여론조사가 선거 막판 명씨만 갖고 있는 지렛대로 작동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24년 10월15일 명씨가 직접 공개한 카카오톡을 보면, 김건희 여사는 명씨에게 ‘명 선생님께 완전히 의지하는 상황’이라며 ‘명 선생님의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한 시점을 특정할 순 없지만, 명씨가 실시해 보고했던 여론조사 보고서 등이 김 여사 등에게 믿음의 대상이 되고, 정치적 선택을 하는 바탕이 됐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하기 위한 여론조사의 비용을 댄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은 약 석 달 뒤인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정작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이들은 집요하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강씨와 시의원 예비후보 ㄱ씨의 전화통화 녹취를 보면 “오늘 오전에 선거비용 보전금이 입금됐다고 들었다. 거짓말하지 말고 돈을 돌려달라”고 대놓고 요구한다. 이때는 강씨가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당선된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실로 옮겨 회계책임자로 일할 때다. ㄱ씨가 명씨에게 건넸던 뒷돈을 김영선 전 의원의 선거비용 보전금으로 갚으라고 요구한 셈이다.
실제, 김영선 전 의원은 2022년 7월29일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 비용을 보전받은 뒤 ㄱ씨와 ㄴ씨에게 각각 3천만원씩 우선 돌려줬다. 이후 미래한국연구소가 홍보물을 작성한 것처럼 허위로 꾸며 6천만원도 추가 지출했다. 강씨는 “(ㄱ씨와 ㄴ씨에게 갚을 남은 돈 6천만원은) 김 전 의원실이 미래한국연구소에 공보물 비용을 주는 형식으로 계좌이체를 했고, 미래한국연구소가 이를 다시 ㄱ씨와 ㄴ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영선 전 의원은 왜 갑자기 등장해 명씨의 뒷돈을 대신 갚았을까. 김영선 전 의원의 등장은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국민의힘 공천과 연관이 있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창원의창 지역구에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알려진 윤한홍 의원 등이 밀던 후보가 있었다. 하지만 지역구와 별다른 연고가 없던 김영선 전 의원이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돼 배경에 의문이 일었다. 이 의문은 뒤늦게 풀렸다. 2024년 9월 뉴스토마토 보도로 명씨가 지인과 한 통화에서 “사모하고 전화해가, 대통령 전화해가지고 (따졌다). 대통령은 ‘나는 김영선이라 했는데’이라데”라고 말했다는 녹취가 공개된 것이다.
애초 명씨는 ㄱ씨와 ㄴ씨 등의 독촉이 거세지자 강씨 등에게 “윤석열 대통령에게 여론조사 비용 3억6천만원을 받아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 돈을 받는 게 여의치 않자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대신 받고, 김 전 의원이 쓴 선거자금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으면 돈을 갚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명씨가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할 여론조사를 하며 여기에 쓰일 비용을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에게 받았다가 이후 대통령으로부터 현물이 아닌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권으로 보상받았다는 얘기다. 이후 김 전 의원은 약점이 잡힌 사람처럼 세비 절반을 따박따박 명씨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 자금 외에도 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선거비용에서 명씨가 실시한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강씨는 유튜브 채널 스픽스에 출연해 “결론적으로 봤을 때, 여론조사 비용 대가가 김영선 공천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의 이와 같은 선거비용 처리를 수상하게 여긴 경남선거관리위원회는 2023년 5월 관련 내용을 적발하고 이를 같은 해 11~12월 무렵 창원지검으로 이첩했다. 창원지검은 같은 해 12월 수사를 시작했다. 명씨와 김 전 의원은 이 수상쩍은 거래에 대해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을 나중에 갚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명씨, 김 전 의원과 함께 일했던 강씨는 해당 돈거래가 윤석열 후보를 위한 여론조사 비용 정산용이라고 증언했다. 강씨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데 김 전 의원이 ‘명태균, ㄱ, ㄴ, ㄷ의 이름이 수사에서 절대 나와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밝혔다. 해당 녹취는 모두 창원지검 수사팀에 제출된 상태다.
‘보수의 종말’을 쓴 신인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명씨와) 공모했다면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위반의 공범이 되는 것이고 공모 행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무상으로 기부받은 것이라면 공직선거법 위반, 여론조사 비용 지출을 면제받은 것이라면 공직 취임 이전에 사전 수뢰에 해당하지 않는지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명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그거(여론조사 명목으로 받은 돈)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그 돈을 내가 본 적도 없고 10원도 받은 적 없다”며 “내가 돈을 받아 오라고 했다면, 돈을 받을 게 있어서 받으러 가라 했을 것이다. 그 돈은 강혜경씨가 이미 김영선 전 의원이 받았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김 전 의원, ㄱ·ㄴ씨에게도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이들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변해오지 않았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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