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한국에서는 약 700명, (…) 위협이 지금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24년 8월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한 말이다. 그는 한겨레가 보도한 “‘딥페이크 제작’ 22만 명 텔레방 “여자 사진 보내라” 5초 만에 합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언급하면서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 한국인만이 아닌 “전세계에서 22만 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과잉규제가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했다.
대체 700여 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산술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뭔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숫자는 남초 커뮤니티와 사이버레커 채널에서 나왔다. 텔레그램 전체 이용자 가운데 0.33%가 한국인이므로 기계적으로 계산했을 때 700명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10대 초반의 어린이까지 성범죄물의 피해자가 됐는데,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게다가 그가 속한 당의 이름은 무려 ‘개혁신당’이다. 어디에 개혁과 새로움(新)이 있다는 건지 좀 궁금해진다.
실제로 이준석이라는 괴상한(Weird) 정치인의 등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국의 전통 우파라기에는 ‘탄핵의 강’을 건너며 이른바 서진정책을 추진했고 새로운 우파, 즉 뉴라이트라고 하기에는 윤석열 정부와 선을 긋는 정도의 상식적인 역사관을 전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신당과 이준석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새로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정치적 자원으로 기대고 있는 온라인 공간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곳에는 이런 용어가 있다. 대안 우파, 즉 얼트라이트(Alt-right, Alternative Right)다.
‘대안’이라니, 어쩐지 긍정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얼트라이트는 2010년대 초반 미국에서 등장한 극우 성향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칭한다. ‘화난 젊은 남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정치세력은 미국의 일베 혹은 펨코라 할 만한 포챈(4chan), 레딧(Reddit) 등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백인우월주의, 여성혐오, 반이민/반이슬람/반유대주의 등 각종 혐오담론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대하면서 기존 정치에 도전해왔다. 이들은 온갖 인터넷 밈과 유머 등을 무기 삼아 소위 ‘인싸’(Normies, 규범을 따르는 사람)들과 문화전쟁을 벌여왔다. 얼트라이트 정치세력화의 중심에는 포퓰리스트 관종 도널드 트럼프가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이준석이 이름값을 만들어온 과정을 보면 그가 한국형 얼트라이트의 대표주자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2012년 이준석은 이른바 ‘문재인 참수 만화 사건’을 통해 남초 커뮤니티 유저로서의 이력을 뽐냈다. 남초발로 SNS에 돌던 문재인 상임고문 모욕 만화를 개인 SNS에 올리고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당시 그는 빠르게 사과했다. 그로부터 10년, 그는 남초와의 연동 속에서 성장했고 이제 웬만한 일엔 사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세를 키웠다.
물론 그가 남초에서 어젠다를 발굴한다는 건 명확히 확인되진 않았다. 다만 합리적으로 의심해볼 만한데, 대표적으로 지에스(GS)25 ‘집게손가락’ 사태를 생각해 보자. 펨코(에펨코리아)를 중심으로 ‘감성캠핑’ 포스터에 수년 전 사라진 메갈리아 사이트의 엠블럼이 등장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 온라인이 뜨거워지자, 2021년 5월1일 이준석은 (다시 또) SNS에 이런 글을 올린다. “핫도그 구워서 손으로 집어 먹는 캠핑은 감성캠핑이 아니라 정신 나간 거지.” 그리고 사 쪽에 책임자 징계를 요구하는 내용을 덧붙였다. 덕분에 그는 나무위키 ‘GS25 남성혐오 논란’ 항목에서 정치권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등록됐다.
이 사태를 전후로 그는 알페스(RPS·실존 인물을 소재로 허구의 애정 관계를 다룬 글이나 그림 등의 창작물) 처벌법 발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의 전쟁, 노인 무임승차 반대, 능력주의와 시험만능주의의 강조 등을 통해 한국식 얼트라이트의 궤적을 그려왔다. 아무리 사자성어를 갖다 붙여가며 우아하게 말해도, 그 정치 철학의 근간은 남초 커뮤니티의 ‘낄낄거림’이다. 무려 국회 과방위에서 내세웠던 ‘산술적 근거’가 사이버레커 채널이었듯이 말이다.
이준석 하나로 개혁신당을 얼트라이트 정당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즈음, 천하람 의원이 화려하게 숟가락을 얹었다. 2024년 4월, 당시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이었던 천하람은 일본의 에이브이(AV) 배우들이 출연하는 ‘성인 페스티벌’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만큼 남성의 권리도 동등하게 존중하라”고 강조하고 “남성의 본능을 악마화하지 말라”며 적극적으로 나선다. 국회의원 당선자로서의 일성이 “남성 본능” 타령이었던 셈이다.
성인 페스티벌은 패션쇼를 빙자한 AV 상품 홍보 행사로, 이미 2023년 한국에서 개최됐다. 일단 한국에서 AV 자체가 여전히 불법이거니와, 2023년 행사 당시 “유사 성매매로 볼 수도 있는 행위를 제공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이 행사 개최를 불허하면서 행사는 잠정적으로 무산된다. 일반 티켓이 7만원, 브이아이피(VIP) 티켓이 320만원인 이 행사에서 어떤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주최 쪽에서는 여전히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천하람이 성인 페스티벌 문제에 법적이고 제도적인 관점이 아니라 ‘여성의 권리 대 남성의 권리’라는 성별 갈라치기 수사를 경유해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준석이 지금까지 반복해온 전략이자 남초 커뮤니티를 지배하던 정서였다. “여자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말하면 “남자가 더 많이 죽는다”고 응수하는 식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실제로 성인 페스티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그에 걸맞은 정치적 입장을 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수고를 감수하지 않았다. 지지층에 어필하는 제스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2023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당시 이준석은 ‘천찍자지’(천하람을 찍어야 자유로운 정치발언 지킵니다)라는 홍보 포스터를 SNS에 올렸다. 환하게 웃는 천하람의 얼굴 위로 거대하게 떠 있는 ‘천찍자지’를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복잡해졌던 기억이 있다. 전남 순천에서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만들기 위해서 오랫동안 열성적으로 활동해온 이 젊은 정치인은 어쩌다 한순간에 ‘천찍자지’가 돼버렸는가. 하지만 덮어놓고 남성의 본능 운운하는 일국의 국회의원을 보고 있자니, 이건 ‘추락’이 아니라 ‘재질’이었구나 싶어지고 말았다.
GS25 감성캠핑 논란, 안산 선수 금메달 박탈 요구, 게임계 사상검증 등 일부 청년남성의 위악적인 놀이의 거대한 흐름 속에 딥페이크 성범죄가 함께 놓여 있다. 각각의 사건들에는 물론 각각의 특수성이 있지만, 그 차이들 안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건 한국 여성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태도다. 마음껏 능욕하고 짓밟아서 저들이 ‘부당하게 누리고 있는 것’을 박탈하겠다는 태도.
딥페이크의 심각성은 테크놀로지만의 책임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놀이로 치부해주는 문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 후보의 등장, 그런 후보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무기를 쥐여준, 이른바 ‘선거 천재’라고 언론이 치켜세워준 얼트라이트의 원내 입성, 포괄적 성평등 교육 폐지, 각종 성교육 도서에 대한 검열 등이 결국은 딥페이크 성범죄 융성이라는 하나의 단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조차도 이 폭력의 연쇄고리에서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이준석이 700여 명을 입에 올리기 하루 전인 8월26일, 사이버레커 뻑가는 “수치적으로 한국인의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전세계에서 0.33%”라며 “22만 명의 0.33%는 726명밖에 안 된다”고 주장하고 딥페이크 범죄의 공포에 대해 말하는 여자들에 대한 공격 좌표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유튜브로부터 수익정지를 당했다. 국회의원과 사이버레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문법대로 말하는 것일 뿐 내용은 결국 동일하다고 할 때, 사이버레커는 수익에 대한 페널티를 먹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에겐 무엇이 주어져야 할까? 얼트라이트는 힙한 이름표가 아니다.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는 정치세력이다.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손희정 시사덕후
*손희정의 정치 리부트: 낡은 세계는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시절, 구태를 뒤집는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은 시사덕후의 시사 평론.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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