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연동형과 병립형 비례대표 선거 방식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민주당 내부가 선거제를 두고 혼란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제도의 발전 관점에서 보면, 이번 민주당 안의 토론은 긍정적 측면도 있다. 특히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거의 반반으로 갈렸으나, 극단적인 대립보단 서로 이해하면서 타협점을 찾으려 한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비례대표 선거제를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대략 두 명으로 압축됐다. 준연동형 이탄희, 병립형 진성준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제21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으로 활동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켜달라며 202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진 의원은 2023년 10월 민주당이 압승한 구청장 보궐선거가 열린 서울 강서(을) 지역구 의원이며, 최근 논란과 관련해 병립형 쪽을 대표해 의견을 밝혔다. 두 의원을 2023년 12월2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5층으로 초대해 맞짱토론을 열었다.
-지금 민주당 안에서 비례대표 선거제를 두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왜 민주당-국민의힘이 아니라, 민주당 안에서 이 토론이 벌어졌나.
=진성준 의원(이하 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준연동형)가 유지되면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도 이에 대응해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이게 딜레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어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독점을 막으려 했는데, 그것이 위성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국민의힘과 합의해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위성정당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길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탄희 의원(이하 이): 이 문제에서 내가 가진 관점은 좋은 선거법과 나쁜 선거법이 있다는 것이다. 2020년 개정된 선거법은 1988년 선거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선거법을 의미 있게 바꿔본 진일보였다. 기존보다 더 좋은 선거법을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정당이고, 그것이 국민의힘과의 큰 차이 중 하나다. 그 가치가 상실되면 국민의힘과의 차이가 작아진다. 그래서 최근 당 안에서 선거법을 과거 병립형으로 돌릴 수도 있다고 할 때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2003년과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나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일이 있었다. 2020년 민주당이 정의당과 손잡고 준연동형을 도입한 것도 그런 전통 위에 있다. 눈앞의 의석만 보면 병립형이 나을 수 있지만, 선거의 비례성이나 다양성을 위해서는 준연동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병립형으로 돌아간다면 민주당으로서는 후퇴 아닌가.
=진: 준연동형이 추구하는 가치엔 나도 동의한다. 문제는 이 선거법 개정이 주요 양당이 합의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소수정당의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선거제가 불안정한 것이다. 연동형을 유지하려면 위성정당을 방지하고 이 제도를 되돌릴 수 없게 하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준연동형을 유지했을 때,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민주당이 비례대표에서 20석 정도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면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당이 되지 못해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의원은 이런 우려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 초기부터 2024년 총선은 지역구에서 결판이 나는 선거라고 생각했다. 현재 윤 정부에 대한 심판에 동의하는 국민이 60% 정도 된다. 그 60% 가운데 민주당을 지지하는 40%를 제외하고 20% 정도의 국민이 투표장에 나올지가 총선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민주당이 준연동형을 유지해서 다양한 비례정당이 나올 수 있게 한다면 투표율이 높아진다. 투표율이 높아진다면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더 많이 이길 수 있다. 위성정당이 아니라, 준연동형이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총선 시뮬레이션에서도 국민이 충분히 투표장으로 나오면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으로 가져가는 20석을 민주당이 극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다수였다.
현재 민주당은 비례대표 선거제를 두고 이중, 삼중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현행 준연동형을 충실히 지키면 정치개혁의 명분을 갖지만, 비례대표 선거에서 20석가량을 포기해야 한다.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만들면 소수정당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또 준연동형을 폐지하고 병립형으로 돌아가면 정치·선거 개혁을 포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에 준연동형-병립형 논란은 11월28일 이재명 대표가 유튜브에서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데서 비롯했다. 이 대표는 왜 이런 논란적인 발언을 했을까. 일부에선 이 대표가 측근을 비례대표에 넣기 위해, 심지어 이 대표 스스로가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공격까지 한다.
=진: 지도부로서는 2024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민의힘과 공평한 조건으로 다퉈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와 함께 병립형 회귀로 명분을 해치면 지역구 선거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고민도 있다. 최근 홍익표 원내대표가 비례연합정당 참여 방안을 이야기했다. 아직 지도부는 이 문제에 결론을 내린 것 같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개인적 이유가 있다는 주장은 과도한 억측이다.
=이: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없다.
-준연동형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선 위성정당 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실제로 방지법을 만들기 어려우니 비례연합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진: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위성정당이나 비례연합정당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 다 해야 한다. 입법권을 가진 정당으로서 방지법을 만들어야 하고, 비례연합정당은 현실적으로 총선에 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비례연합정당은 혼자서 3%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정당들에 대한 투표가 사표(의석에 반영되지 않는 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에 따라 정당 투표에서 3% 이상을 얻는 정당에만 비례대표를 배분한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돌아가지 않고, 위성정당도 만들지 않으면서 좋은 선거 결과를 만들 방법은 비례연합정당밖에 없어 보인다.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퇴행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 위성정당 논란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에 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병립형이나 위성정당은 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과의 관계를 악화해 다음 대선에서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에서 비례연합정당을 만들면 민주당이 거기에 참여해야 하나.
=이: 민주당의 참여 필요성을 주장하는 분들의 말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고 미리 말한다면 위성정당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서 위험하다.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소수정당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진: 비례연합정당에 민주당이 참여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지역구뿐 아니라 비례대표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모두 끌어들여야 한다. 민주당이 참여해야 비례연합정당에 대한 전체 지지율이 높아져 소수정당들도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2020년 총선 때는 시민사회에서 먼저 준연동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매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는데, 정의당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위성정당으로 낙인찍혔다. 민주당이 얻을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을 민주당이 포기한다고 진보 정당들이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경우 어떻게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나? 민주당은 전술적 선택을 좀더 당당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면 비례 의석에서 진보 정당에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진: 그것은 얼마든지 진보 정당들과 협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가 지역구에서 초과 의석을 갖는데, 비례대표까지 욕심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지역구에서도 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드는 것이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데 유리하다. 비례연합정당에서 그런 부분까지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병립형으로 간다면 기존의 전국 병립형이 아니라, 권역별 병립형 이야기가 나온다.
=이: 비유하자면 병립형은 월셋집, 준연동형은 전셋집이다. 1988년부터 32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전셋집으로 왔는데, 다시 월셋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창문 하나 더 내자고 하는 꼴이다. 굳이 병립형을 한다면 권역별로 하는 게 조금 나을 수 있지만, 준연동형과는 비교할 수 없다. 권역별로 하더라도 지역 구도 완화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유명무실한 주장이다.
=진: 병립형으로 돌아간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금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다. 다만 호남과 경남을 묶어서 한 권역으로 한 것은 이상하다. 호남에서 호남표, 경남에서 경남표가 나올 테니 말이다. 이게 지역 구도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수도권(16석), 중부권(15석, 충청·강원·경북), 남부권(16석, 호남·경남·제주) 등 3개 대권역으로 나눠서 비례대표를 뽑는 것이다. 호남에서 영남 의원을, 영남에서 호남 의원을 뽑는 등 지역주의를 완화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이 전국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소수정당들은 거의 의석을 가져가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준연동형이 나온 근본 이유는 현재 한국에서 양당제가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당이 극단적 정치로 교착상태에 빠진 지 오래됐다. 두 당이 타협하지 못하고 계속 충돌하니까 정부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윤 정부 들어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가 6건,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 건의와 대통령의 거부가 3건이나 된다. 그래서 준연동형을 통해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양당이 아닌 정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양당의 조정자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2023년 5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시민 공론조사를 했다. 거기서 시민 다수가 지역구 소선거구제 유지, 비례대표 의석 확대, 비례대표 전국 선거구로 가야 한다고 했다. 굉장히 절묘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못 늘려서 준연동형 유지-병립형 회귀로 좁혀진 것이 안타깝다. 결국 대한민국 정치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면 연합정치다. 현재 한국은 무정부 상태다. 국회도 일을 못하고, 행정부도 일을 안 한다. 비토크라시로 인해 정치가 올스톱 상태다.(비토크라시는 여야가 서로 반대를 일삼아 의회와 행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정치 상태를 말한다.)
=진: 두 거대 정당이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해 30%의 무당층이 존재한다. 두 정당이 이 무당층을 포섭하려면 혁신해야 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은 이 무당층의 요구를 바탕으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기존 양당이 제3세력 출현을 막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양당제가 문제라고 하는데, 양당제는 정당에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당제가 되는 경우 책임성이 약화할 수 있다.
-지금 시대정신이 다당제와 연합정치라는 의견이 있다.
=진: 정치적 다원주의나 다당제를 모색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현재 더 중요한 국민적 요구는 윤석열 정권 심판이다. 이것이 최우선 과제이고 명분이다. 그에 입각해서 선거제나 전략전술을 꾸려야 할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 윤석열 정권으로 인해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
=이: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의견에 절대 동의한다.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려면 민주당이 1당이 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연합정치 토대까지 만들어서 윤석열-국민의힘 정부의 기반을 최소로 줄여야 한다.
-다당제와 연합정치로 가려면 대통령제보다는 의회제(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 내각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권리는 국민이 포기할 수 없다.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에 의원내각제는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연정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 대통령제는 그 권력구조의 특성상 연합정치, 연합정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 1인을 뽑는데, 그 대통령의 선의나 전략적 필요가 있어야 연정이 가능하다. 대통령에게 연합정치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대통령제와 조응하는 연합정치는 뭔가 부자연스럽다. 대통령제에는 양당제, 내각제에는 다당제가 어울린다.
-정리하자면, 지금 민주당이 채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례대표 선거제는 무엇인가.
=진: 민주당이 준연동형을 병립형으로 되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당내에 좀더 많아지는 것 같다. 준연동형을 주장하는 분들도 위성정당이 아닌 비례연합정당에 좀더 열린 자세를 보이면 좋겠다. 그런 방향으로 수렴돼가지 않겠나. 준연동형을 유지하면서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어 민주진보 진영이 단일한 전선을 만드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이: 첫째로 준연동형이 유지돼야 한다. 약간 문제가 있다고 과거의 병립형으로 돌아가면 증오 정치로 인해 앞으로 윤석열보다 더한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 둘째로 준연동형을 유지한다면 선거연합 전술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겠다고 먼저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번 선거법 개정 논의도 준연동형 유지와 병립형 회귀 사이에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번에 보니 길이 많이 막혀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은 준연동형을 반대하고, 국회의원들은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것에 반대하고, 국민은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돌파할 수 있을까.
=이: 선거제나 의원 정수나 세비 등은 국민 공론조사를 해서 결론을 낸 뒤 국민투표로 결정하면 좋겠다. 국회에 입법권이 있지만, 국민투표를 통과한 안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21세기 들어 선거법을 개정한 칠레나 뉴질랜드는 국회가 아니라, 별도 위원회에서 개정안을 만들고 국민투표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안 가본 길을 가보면 좋겠다.
=진: 선거법은 외부에 맡긴다고 해도 결국 국회에서 입법해야 한다. 외부에서 이상적인 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국회가 손 떼야 뭔가 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청산주의다. 입법은 국회가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진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의 한계도 오류도 있었고, 때로는 기회주의적 태도도 있었다. 이번 총선 과정이 그런 문제들을 혁신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하철 문이 닫히는데, 내가 팔이라도 넣어서 닫히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그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진행·글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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