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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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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에 설렌다, 공존과 상상을 조직하길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 산뜻하고 로맨틱한 정치를 기대하며
등록 2023-12-22 09:56 수정 2023-12-24 07:19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12월18일 서울 용산씨지브이(CGV)에서 열린 <길 위에 김대중> 시사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12월18일 서울 용산씨지브이(CGV)에서 열린 <길 위에 김대중> 시사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뭐지? 이 뜻밖의 느낌은? 신당 의지를 밝힌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송 인터뷰를 보다가 낯선 기운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가 현안을 설명하거나 대책을 발표하거나 혹은 유세나 기타 등등 어떤 책무가 아닌 오롯이 자신의 거취와 계획을 밝히는 모습을 본 건 드물다. 민주당 안팎의 우려와 비판, 비난에도 그의 표정은 불안하지도 고집스럽지도 않았다. 훈련된 언행 덕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에게서 느낀 건 일종의 설렘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이낙연의 정치’를 본 적이 없다. 그는 선도자였던 적이 없다. 김대중 정치, 호남 정치, 문재인 정치를 따르거나 누리거나 도왔다. 중요하고 의미 있었지만 스스로 그어놓은 금을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대선 전 후보 경선에서 보여준 실력은 그리 출중하지 못했다. 당대표 시절에는 강성 목소리에 떠밀려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를 내는 잘못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꼼꼼한 ‘돌봄’에 감탄한 일이 적지 않다. 재난에 처한 노인들의 복용약부터 챙긴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점에서 푸성귀 파는 노인과 얘기 나눈 뒤 떠날 때 옷 안주머니에서 1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살짝 쥐여주는 모습은 꽤 긴 여운이 남았다. 더구나 그 장면을 내세워 홍보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제21대 총선 당일 출구조사 결과 발표에 환호하는 인사들을 손으로 자제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 6주기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 디테일을 지닌 이가 지금의 민주당 상황을 견디기 힘들리라는 건 충분히 이해 간다. 비교적 선명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그를 명분 없고 무책임하다고 몰아붙이는 건 온당치 않다. 특히 의원들이 연서명 형태로 만류한 것은 ‘민주당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애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이재명 대표를 향한 충성 경쟁, 혹은 공천을 위한 ‘십자가 밟기’가 되어버렸다. 그 무엇을 해도 빨려 들어가 버리는 정치 블랙홀이다. 다시 그 한계에 갇힐 것인가. 이번만큼은 이낙연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그는 지금 계산속보다는 본능을 따르는 듯하다. 지든 이기든 이미 꽤 낭만적이다.

표정이 산뜻하기로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마찬가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옹립이 그에게 마지막 미련을 거둬준 것 같다. 대놓고 당무 개입을 하는 ‘용산’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윤심’을 헤아리느라 우왕좌왕한 인사들의 모습도 딱하다. 총선 때까지 그냥 대통령이 총재를 하는 한시적 특례법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을 정도이다. 어쩌자고 이렇게 열심히 엉망진창일까. 진작 ‘견적 내기’를 포기한 이준석의 마음 역시 충분히 이해한다.

이준석 신당이 된다, 안 된다는 말은 아끼는 게 좋겠다. 더욱이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라면 공연한 훈수질은 삼가자. 여권이 김건희 특검법을 안 받거나 총선 뒤로 미루려면 야당을 향한 사정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당이 아니라 이준석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에게는 받는 대로 되갚아준다는 특유의 기질에 앞서 적어도 모든 경쟁은 ‘페어’해야 한다는 감각이 장착돼 있다. 잘사는 나라, 특히 아이티(IT) 선진국에서 게임을 하며 성장한 세대의 공정감일까. 앞으로 이준석의 정치가 그려나갈 모습의 일면이기도 할 것이다.

극단화된 양당 체제에 질식할 것 같은 이들에게 두 사람의 신당은 숨구멍이다. 우리 정치에는 공존과 상상이 필요하다. 더는 단무지와 오이지 중에서만 골라 먹기 싫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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