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집권세력이 국민을 바보로 여긴다. 국민은 집권세력을 더 바보로 여긴다. 지금 정부·여당이 막 던지는 정책이 나에게 당장 이롭다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지지하리라 믿는다면 심히 어리석다. 뭐든 굳이 준다면 받고 표는 소신대로 찍는 게 21세기 유권자의 도리이다. 국민의힘이 난데없이 띄운 ‘서울시 김포구’에 대해 김포 시민들은 2024년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일요일 저녁 느닷없이 발표한 공매도 전면 금지 방침도, 교육부 장관조차 ‘혼돈의 아노미’에 빠뜨린 의대 정원 확대 방침도, 누가 언제 얼마를 내고 받는지 정작 필요한 ‘숫자’는 쏙 빠진 연금 개혁 방안도, 너무 쉽게 들이밀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일이 ‘살면서 가장 슬픈 날’이라 했고 국회 시정연설 뒤 상임위원장들을 만나 ‘가장 기쁜 날’이라 했다. 우리는 ‘가장 어이없는 날’을 갱신 중이다.
일단 던지고 보는, 안 돼도 나 몰라라인, 좋을 대로 과장하고 욕먹으면 더 어깃장 놔버리는 행태는 도처에서 감지된다. ‘윤석열 스타일’이다. 특히 군, 검찰, 감사원, 금융당국 등 공권력을 쥔 영역일수록 그 뻔뻔함과 억지스러움을 따라 한다. 그래도 되니까, 어쩌면 그래야 하니까.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이 하반기 인사에서 줄줄이 유임하거나 심지어 승진했다. 문책은커녕 보란 듯이 ‘책임 없음’을 명토 박은 것이다. ‘표적 감사’ 혐의를 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소환에 막무가내 불응했다.
그간 공매도의 순기능을 강조해온 금융당국은 금지 발표 불과 이틀 전까지 “확정된 바 없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180도 방침을 뒤집고는 그 이유를 대지 못한다. 금융위원장은 “한국의 특이한 상황 때문”이라고만 했다. 외국인·기관 투자자와의 형평성에 불만 있는 개인 투자자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이겠으나, 자본시장 신뢰도에 영향이 큰 정책을 이렇게 기습적으로 다뤄도 되나. 참으로 제멋대로인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검찰이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를 한 <뉴스버스>와 <경향신문> 전·현 기자들의 주거지까지 압수수색한 것이야말로 ‘한국의 특이한 상황’이다. 영장 표지 죄명란에 ‘배임수재 등’이라고 적고 실제 집행에서는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단다. 명예훼손은 배임수재와 달리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 대상이 아니니,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대놓고 속임수를 쓴 셈이다. 배임수재는 검찰이 대장동 김만배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의 돈거래에 적용했고, 둘 사이의 녹취파일을 <뉴스타파>가 보도한 것에도 연관 지은 혐의이다. 그러나 <뉴스버스>와 <경향신문> 보도는 녹취파일 보도와는 상관없다. 공통점이라고는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이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것뿐이다.
‘~등’은 일찍이 시행령 꼼수 때도 등장한 ‘마법의 표현’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수사 가능 범위를 정한 검찰청법의 해당 대목 “부패 범죄, 경제 범죄 등 중요 범죄”의 ‘~등’을 내세워 그 밖의 범죄도 수사할 수 있다고 ‘신박한 해석’을 했다. 대검 예규에도 마음대로 ‘~등’을 붙여놓더니 스리슬쩍 이번 기자들 수사에 써먹었다. ‘대선개입 여론조작’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동원한 것은 민망하다 못해 차라리 모른 척해주고 싶다. 칼을 쥐었으니 정의로워야 하거늘, 정의로워서 칼을 쥐었다는 착각들을 단단히 한다.
권력자가 무섭기보다 우스워지면 체제에 망조가 든다는데, 우리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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