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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검찰의 ‘수사의 정치화’, 어디까지 갈까?

구속영장 기각으로 여야 분위기 뒤집혀… ‘정치의 사법화’와도 다른 ‘수사의 정치화’로 야당 대표 압박
등록 2023-10-07 17:18 수정 2023-10-12 12:11
2023년 9월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나치게 길게 설명하면서 본회의가 잠시 중단됐다.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김진표 국회의장(위 가운데)이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위 왼쪽)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불러 상의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2023년 9월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나치게 길게 설명하면서 본회의가 잠시 중단됐다.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김진표 국회의장(위 가운데)이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위 왼쪽)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불러 상의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정치인과 정당의 부패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하면서 ‘폭로-수사-기소’라는 방식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고, 여야 간 힘의 대립에서 검찰과 사법부의 판결에 의존하는 정도를 크게 높임과 동시에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의 힘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로버트 달의 책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한국어판 서문, 후마니타스, 2010)

2023년 9월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에 따라 2년 전인 2021년 9월 시작된 ‘이재명 수사’가 마무리되고, 이 대표는 곧 기소돼 재판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3차 청구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수사, 이제 재판으로 넘어갈 듯

정치권에선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재명 대표가 “죽다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많다. 반면 이번 수사를 총지휘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타격이 클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또 그동안 이른바 ‘이재명 리스크’로 민주당을 압박해온 여권의 공세가 무뎌지고 민주당의 대반격이 시작되리라는 진단도 있다. 이번 영장 기각 결정을 계기로 코앞에 닥친 10 월 11 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물론이고 , 2024 년 4 월 국회의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유리해졌다는 성급한 예상까지 나온다 .

그런데 검찰이 청구하고 법원이 기각한 구속영장 하나에 이렇게 행정부가 요동치고 여야의 분위기가 뒤집어지는 것은 합당한 일일까? 거꾸로 이번에 청구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면 민주당은 초상집이 되고, 국민의힘은 잔칫집이 됐을 것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구속영장의 인용-기각 여부가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이번 수사나 영장 청구가 정치적 사안임을 보여준다. 야당 대표여서 논란이 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서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오랫동안 수사하고, 많은 압수수색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정치가 수사나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받는, 이런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라고 불러왔다. 한국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나타났고, 특히 2004년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과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본격적인 시작으로 여겨진다. 그 뒤에도 헌법재판소는 2009년 미디어법, 2011년 양심적 병역 거부,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2015년 간통죄 위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법원은 2018년 일제 강제동원 배상, 2020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취소 등 정치·사회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놓았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정치학)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부터 이런 일이 2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합의나 타협을 못하고, 법관들에게 중요한 결정을 떠넘긴다. 이러면 정치와 민주주의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서는 이번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이 직접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이번 영장 기각 결정이 나온 9월27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한 장관은 “정치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사법이 정치가 되는 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총장도 “사법은 정치적 문제로 변질돼서도 안 되고 정치적 문제로 변질될 수도 없으며 변질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사가 정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외려 이런 주장이 이들의 수사가 정치적 목적이 아니었는지 의심을 일으킨다.

현재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상대로 벌이는 수사는 그동안 경험해온 ‘정치의 사법화’와는 조금 다르다. 기존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권이 어떤 문제를 사법부(법원, 헌법재판소)에 넘긴 뒤 그 판단에 정치권이 영향받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법원의 판결에 앞서 검찰의 수사나 영장 청구에 정치권이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경향은 ‘정치의 사법화’보다는 ‘수사에 의한 정치’(수사 정치), ‘수사의 정치화’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1998년 9월14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탄핵관련 보고서가 공개된 11일 조찬 기도회에서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관련해 자신이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고 있다. 이 성추문 사건은 클린턴 대통령의 부적절한 행위와 함께 `수사에 의한 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AFP연합뉴스

1998년 9월14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탄핵관련 보고서가 공개된 11일 조찬 기도회에서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관련해 자신이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고 있다. 이 성추문 사건은 클린턴 대통령의 부적절한 행위와 함께 `수사에 의한 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AFP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전후로 나뉘는 ‘수사 정치’

이런 ‘수사 정치’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잘 나타났다. 1999년 미국 정치학자인 벤저민 긴스버그와 마틴 셰프터는 같은 이름의 책에서 이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불렀다. 대화와 타협, 합의, 투쟁 등 정치 수단이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는 뜻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빌 클린턴 성추문, 화이트워터 사건 등이 꼽혔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책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한국어판 서문(2010)에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정치를 정치 밖의 도덕적 이상과 규범을 통해 인식하게 하면서 반부패 담론을 지배 담론의 하나로 만들고 이를 판단의 기준이자 목표로 삼는 개혁안들을 정치 개혁 의제의 최우선 순위로 자리잡게 했다. 경쟁적 여론 동원과 사법 권력의 개입을 동반한 이 과정은 정치를 정치권 밖으로 끌어내는 직접적 효과를 만들어냈고,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팽배와 더불어 정치의 다운사이징 내지 탈정치화를 초래했다.” 다시 말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정치의 핵심 의제를 ‘반부패’로 만들어 정치를 정치 영역에서 몰아내고 수사·재판 기관이 정치를 주도하며 반정치주의를 강화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수사 정치’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에 따른 검찰의 권한 강화와 관련이 깊다. 그전엔 검찰보다 정보기관이나 경찰의 힘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수사 정치’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유서 대필 조작 사건, 김영삼 정부의 전두환·노태우의 비자금과 군사반란·내란 수사,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수사와 대선자금 수사,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문재인 정부의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와 사법부 수사, 조국 수사, 윤석열 정부의 이재명 대표 수사로 이어졌다.

그런데 ‘수사 정치’의 성격은 문재인 정부 이전과 이후가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는 대통령 등 집권세력이 검찰을 활용해 ‘수사 정치’를 주도한 데 비해, 문재인 정부 시절엔 검찰 스스로 ‘수사 정치’를 주도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수사나 청와대 상대 수사는 검찰 주도로 대통령에 맞선 새로운 ‘수사 정치’였다. 이제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사실상 한몸이 돼서 ‘수사 정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하승수 대표는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수사도 이런 ‘수사의 정치화’였다. 정치적인 특수부 검사들을 중용해서 정권까지 넘겨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치적 수사를 해온 검사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할 수 있는 정치가 수사밖에 없다. 진짜 정치는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이런 윤석열 정부의 ‘수사 정치’는 이미 대선 때부터 예고됐다. 2021년 12 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양자 토론회를 거부하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 중범죄가 확정적인 ,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후보 ” 라며 비난했다 .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22 년 4 월부터 검찰과 경찰은 이재명 후보와 관련한 10 개 사건의 수사를 동시에 벌였다 . 윤 대통령은 2022 년 8 월 이재명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된 뒤에도 만남을 거부했다 .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2022년 11월25일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흘 뒤인 11월28일 “정치인이 자기 범죄에 대한 방어를 위해 사법에 정치를 입히는 ‘사법의 정치화’라는 말이 좀더 어울린다”고 반박했다. 자신들의 정당한 수사를 이재명 대표가 정치적인 일로 만든다는 주장이었다.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으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왼쪽 뒤에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얼굴이 보인다. 공동취재사진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으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왼쪽 뒤에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얼굴이 보인다. 공동취재사진

구속영장 청구 요건도 안 되는데, 왜 청구하나?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수사 정치’의 주요 수단인 ‘구속’에 대한 논란도 일으켰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 청구의 요건은 크게 △범죄 의심의 상당한 이유 △도망의 염려 △증거인멸의 염려다. 이 밖에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준을 적용할 때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타당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이 대표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도망의 염려는 없다고 보이고, 36~376회의 압수수색을 당했으므로 증거인멸의 염려도 거의 없었다. 또 범죄 의심의 상당성에 대해선 검찰과 이 대표 사이에 의견 다툼이 크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정기 국회 개회 중에 야당 대표를 구속하려 한 일은 국회의 운영을 방해한 것이다. 또 범죄 혐의의 상당성도 없었고, 급박한 도망이나 증거인멸 우려도 없었는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진지하게 해명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듯, 형사사건의 대원칙은 불구속하는 것이다. 다만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구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은 수사기관을 상대로 자신을 방어하기가 매우 어렵고, 구속되면 거의 방어가 불가능하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엄격하게 구속 요건을 판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유명인 관련 사건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관행처럼 돼 있다. 이것은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피의자에게 엄청난 타격을 줘왔고, 이것이 검찰의 힘이기도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선 중요 인물 사건에서 구속영장 청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검사뿐 아니라 언론이나 국민도 그렇다. 그런데 사실 구속영장은 전관(검사·판사 출신) 변호사들의 돈벌이 수단이다.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피의자가 비싼 전관을 찾기 때문이다. 국민의 자유권이 전관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9년 10월14일 사퇴 의사를 표명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조국 사태’는 대표적인 `수사 정치’의 사례로 꼽힌다. 백소아 기자

2019년 10월14일 사퇴 의사를 표명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조국 사태’는 대표적인 `수사 정치’의 사례로 꼽힌다. 백소아 기자

“불체포특권은 삼권분립 지키는 장치”

이번 사건은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대한 논란에도 불을 붙였다. 불체포특권은 헌법 제44조 1항에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힘이 강한 행정부로부터 입법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과거 ‘방탄 국회’로 인해 그 의미가 일부 퇴색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은 모두 당론이나 대선 공약 등으로 이 특권의 폐지나 포기를 밝혀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조항의 폐지나 포기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별위원장은 “불체포특권은 집권 행정부가 입법부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삼권의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만든 제도다. 헌법 조항이어서 개별 의원이 포기하는 것은 위헌이다. 만약 어떤 의원이 이 특권을 쓰지 않겠다면 다른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에 찬성해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이 특권을 폐지하는 것은 민주주의 역사에 비춰볼 때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국회의원도 검찰의 정당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불체포특권 뒤에 숨지 말고 법원 심사를 받아야 한다. 애초에 행정권 남용을 막으려는 취지가 있었지만, 그동안 의원들이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개헌한다면 폐지도 검토할 만하다. 앞으로 검찰을 개혁해서 기소만 하게 한다면 검사의 영장 청구도 좀더 신중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참고 문헌: 
오승용,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법의 지배, 2010
이종수,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를 둘러싼 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2013
정영훈, 불구속수사·재판의 원칙의 발전과 정체, 인신구속제도의 재편 방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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