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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역사 쿠데타로 보수 분열시켜…대구·경북도 반대

홍범도 장군 등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 5명 흉상 이전 논란… 뉴라이트에 대한 올드라이트의 반발 불러
등록 2023-09-09 15:44 수정 2023-09-15 10:21
육군사관학교가 학교 안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5인의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들의 흉상을 학교 안팎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빗물에 젖어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가 학교 안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5인의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들의 흉상을 학교 안팎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빗물에 젖어 있다. 연합뉴스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나, 자유시 참변에서 독립군의 씨가 마르는 데 주역이었다. 소위 소련군이 된 이분을 굳이 흉상을 세우고 육사에 만들라고 했는지 의문이다.”

“공산주의자 간첩 신영복을 존경하고, 6·25 남침 주역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 하고,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걸라고 하는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군을 어떻게 만들고자 했는지 다 드러났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202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와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2022년 10월 국감, 신원식 의원이 처음 제기

‘육군사관학교 독립영웅 5인 흉상 이전 논란’(육사 흉상 이전 논란)은 신원식 의원의 이런 발언에서 비롯했다. 신 의원은 육사 출신으로 수도방위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 차장 등을 지낸 예비역 중장이다. 신 의원은 2022년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 충무관 앞에 세워진 것을 문제삼았다. 신 의원의 지적 뒤 국방부와 육사는 2022년 11월부터 ‘국회 지적 사항’이라는 이유로 조용히 육사 흉상 이전을 추진했다.

신 의원은 “홍 장군이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독립운동한 것을 인정한다. 독립군과 광복군도 국군의 뿌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원으로 활동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군과 육사는 기본적으로 북한과 싸우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소련은 북한의 남침을 사주한 나라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가 터진 것은 2023년 8월25일이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육사의 독립영웅 5명 흉상 이전 계획을 폭로했다. 이들은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이며,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흉상 이전 추진 이유를 밝혔다. 육사가 5명의 흉상 이전을 독립기념관에 문의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독립기념관은 이 흉상들을 전시할 수는 없고,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전체 5명 지도자 가운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은 홍범도 장군 한 사람뿐이다. 홍 장군 경우도 1927년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뒤 독립운동에 적대행위를 한 것이 없다. 심지어 1945년 해방 전 소련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경우가 많았고, 미국과 같은 편에서 일본, 독일과 맞서 싸웠다. 해방 전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홍 장군을 폄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2018년 3월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육사는 항일 투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연합뉴스

2018년 3월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육사는 항일 투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연합뉴스

보수 쪽 이종찬 광복회장이 강력히 비판

8월27일엔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며 전 국가정보원장이자 육사 출신인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종섭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전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절친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의 아버지이며,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여기 다섯 분의 영웅은 일신의 영달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 찾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시작했다. (…)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장관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임을 충고한다.”

이 흉상을 설치한 때의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같은 날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 국권을 잃고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떠돌며 풍찬노숙했던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이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는가. 부디 숙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해방 전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2년 박정희 장군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줬고,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국방부 앞에 홍 장군 등 13명의 흉상을 세웠다. 또 2016년 박근혜 정부는 1800t급 잠수함에 ‘홍범도함’이란 이름을 붙였고,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육사에 홍 장군 등 5명의 흉상을 세웠다. 또 문재인 정부는 2021년 홍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옮긴 뒤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줬다.

이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동자 서훈 공적심사 일반기준’에 따르면 ‘(광복 이전은 물론이고)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거나 적극 동조한 것이 아니면 사안별로 판단해 포상 검토’하게 돼 있다. 독립운동가의 경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념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동조했는지가 포상 배제 기준이다.

8월30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어떻게 하자고 하진 않겠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고 한번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사실상 홍 장군에 대해 재평가하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8월31일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고, 홍 장군 외 5위의 흉상은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 앞 홍 장군 흉상 이전이나 홍범도함의 이름 변경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 5인의 흉상을 육사 충무관 앞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2022년 10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에서 요구하면서 비롯했다. 2022년 10월6일 국회 국방위의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신 의원이 김승겸 합참의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 5인의 흉상을 육사 충무관 앞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2022년 10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에서 요구하면서 비롯했다. 2022년 10월6일 국회 국방위의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신 의원이 김승겸 합참의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건국훈장, 홍범도함, 국방부 앞 흉상까지 논란

9월1일엔 홍 장군이 받은 훈장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한국방송(KBS)에 나와 “홍범도 장군이 두 번째 받은 훈장인 대한민국장은 (타당한) 절차가 없었다”며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9월3일 문 전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그는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 모신 것은 우리 국군이 일본군 출신을 근간으로 창군된 것이 아니라 독립군과 광복군을 계승하고 있으며, 육사 역시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고 있음을 천명한 일이다. (…)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나서지 않았고, 국방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신흥무관학교인가, 아니면 국방경비사관학교인가'라는 질문에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국방경비사관학교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신흥무관학교가 육사의 뿌리임을 부정한 답변이었다.

과연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와 육사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황원섭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대통령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 백선엽, 박정희 같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을 국군의 뿌리로 본다. 이번 논란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의 후예들이 일으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제 식민지를 통해 한국이 발전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의 인물은 윤석열 정부에 다수 포진해 있다. 대표적 인물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 현재 일본과의 무조건적인 관계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신지호 국무총리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 강규형 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도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윤석열 정부의 친일적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강제동원 문제 처리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 한·미·일 동맹 등을 보면, 일본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태도가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에 육사가 홍 장군만이 아니라 이회영 선생,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의 흉상을 충무관 앞에서 다른 곳으로 모두 옮기는 데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항일 투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근현대사)는 “윤 정부가 안보를 위해 일본과 밀착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태도가 안보에 도움이 될까? 일본군 출신들을 국군의 뿌리로 생각한다면 과연 일본에 대해 정상적인 안보 의식이 생기겠나. 일본을 무작정 추종하는 태도는 오히려 안보를 위험하게 한다”고 말했다.

2018년 8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8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편협한 역사의식, 대구·경북서도 반대가 2배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는 “윤 대통령의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냉전 자유주의, 반공 자유주의다. 현재가 신냉전 시대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윤 정부의 이런 역사 쿠데타는 성공할 수 있을까?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전 의원)는 “애초 의도는 보수-진보를 갈라치려는 의도였는데, 결과적으로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를 갈라쳤다. 보수 성향이고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종찬 전 원장이 강하게 비판한 일이 상징적이다. 이번 사태는 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찬성 2 대 반대 8로 만들었다. 이런 무지한 일을 계속하면 정권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결과는 확인됐다. 9월1일 뉴스토마토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9%가 흉상 철거에 반대했다. 철거 찬성은 22.1%였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나이대에서 60% 이상이 반대했으며, 60대 이상에서도 반대가 58.8%, 찬성이 25.0%였다. 지역별로도 모든 지역에서 반대가 60%를 넘었다. 보수의 중심인 대구·경북에서도 반대 65.1%, 찬성 24.0%로 별 차이가 없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이번 일은 2024년 총선에 아주 불리할 것이다. 보수 쪽에도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하는 사람이 많은데, 보수를 분열시켰다. 경제나 민생에 집중해야 할 때 이념 논쟁을 벌여서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무시하고 이런 일을 계속 벌인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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