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김수영, ‘거대한 뿌리’ 부분
매국은 언제나 애국이라는 가면을 쓴다. 국가의 이익, 국민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주장 뒤에 자신들의 이익을 감춘다. 따라서 민족 전체를 폄훼하고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키는 것은 매국의 고유한 패턴이다. 혜택받는 대상으로 국민을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도록 사용한 수법이다. 자신들만의 대의인 매국을 위해 개인은 희생돼야 마땅하다. 개개인의 고통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분투는 은폐돼야 했다. 당연히 매국에는 국민 개개인이 있을 수 없다.
애국은 언제나 거창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한다. 가족과 이웃, 된장독과 텃밭, 일터와 반복되는 일상, 사투리와 모국어, 평범한 삶이 나누는 소박한 애정이 비상 시기에 애국으로 드러난다. 하찮아 보이는 몽당연필에 한 사람의 삶이 녹아 있고 낡은 구두와 녹슨 연장에도 삶이 이뤄놓은 존엄함이 담겨 있다. 누구도 뺏을 수 없고 함부로 폄훼할 수 없는 것이다. 애국은 영토와 재산, 생명을 지키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한 개인의 존엄한 삶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위정자들이 팔아먹은 나라를 국민이 되찾은 것은 늘 자기 삶의 존엄을 지켜왔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 선생은 1910년 8월29일 일제에 의한 강압으로 합병조약이 체결됐을 때 “일반 백성의 뜻을 말하자면, 표면으로는 본래부터 침착하여 아무 일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저 꼬불꼬불한 좁은 거리의 노래에도 어두운 방 안의 울음에도 어느 하나 조국의 사상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밭매는 사람은 호미를 휘두르면서, “어느 때 저 왜놈 제거하기를 잡초 없애버리듯 할꼬” 하고, 나무꾼은 도끼를 휘두르면서 “언제 저 왜놈들 베기를 땔나무 베듯 할꼬” 한다. 빨래하는 부녀자들은 “나는 어느 날에 왜놈들을 방망이로 때려 칠꼬” 하고, 새를 쏘는 아이들은 “나는 어느 때 왜놈을 쏴서 잡을꼬” 하며, 기도하고 제사 지내는 무당과 점쟁이도 “신이여, 어느 날에 무도한 왜놈들에게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한다. 이것은 모두 백성들의 독립정신이 뇌수에 맺히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분수없이 ‘동화’(同化)라는 쓸데없는 말을 한단 말인가. -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나라가 합병된 후에 순절한 여러 사람 및 지사단’
1919년 3·1 독립운동은 궁벽한 밭과 빨래터에서, 국내외 먼 시골까지 대항해 일어났다. 그해 3월1일에서 5월 말까지 삼엄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박은식 선생이 신문과 통신, 구전을 통해 ‘독립운동 일람표’를 정리했는데, 모두 소개하지 못해 아쉽지만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적어본다. 경성, 57회 집회에 57만이 모였고 1200명 투옥. 황해도 안악, 16회 집회에 2만5천이 모였고 47명 사망. 평안도 의천, 38회 집회에 6만이 모였고 31명 사망. 함경도 고원, 4회 집회에 1만5천이 모였고 48명 사망. 강원도 철원, 7회 집회에 7만이 모였고 937명 투옥. 충청도 아산, 13회 집회에 2만2800이 모였고 40명 사망. 전라도 목포, 2회 집회에 6만1500이 모였고 200명 사망. 경상도 대구 4회 집회에 2만3천이 모였고 212명 사망. 서북간도 용정, 17회 집회에 3만이 모였고 20명 사망. 의주의 상인은 철시하고 직공은 파업했으며 촌민은 땔나무와 양식의 운반을 금하고 관리들은 퇴직했다. 평양에서는 기독교가 앞장섰고, 15채의 교회를 잃었다. 3월25일 진주에서는 노동독립단과 걸인독립단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날 400명이 체포됐다.
3·1 독립운동은 국민의 운동이었다. 나무꾼과 기생, 맹인과 광부들, 이름도 없이 살던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들이 앞장섰다. 애국지사들의 옆에 우리 모두 함께 있었다. 국민주권과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열망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계층·지역·성별·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한 사람 한 사람 당당한 국민이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3·1 독립운동은 국민이 만들어내고 국민이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다. 따라서 3·1절은 왕정과 식민지를 뛰어넘어 민주공화국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반전시킨 국민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자리다. 나라를 팔아먹은 통치자들의 자리에서는 열강에 휩싸인 허약한 대한제국만이 보였을 것이다. 국민의 정당한 항거를 이해할 리 없다. 자랑스러운 이유도 알 리 없다. 입장은 명확하게 갈린다. 국민의 자리에서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스스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 힘이 이뤄놓은 지금 대한민국의 자리에서 다시 국민에게서 희망과 가능성을 보는 일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3·1절,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해서 실현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민에 의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에 의해서 지켜졌습니다”라 말하며 우리 국민의 역량을 높이 존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3·1절, “우리는 100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변수도 되지 못했던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에 손색이 없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스스로를 지킬 만한 넉넉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며 우리 국가의 역량이 국민의 노력으로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3·1절, “우리에겐 독립운동과 함께 민주공화국을 세운 위대한 선조가 있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건국 2세대와 3세가 있습니다. 또한 이 시대에 함께 걸어갈 길을 밝혀준 수많은 촛불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가 있습니다”라 말하며 해방과 국민주권을 가져온 민족의 뿌리로 3·1 독립운동의 가치를 부각했다.
전임 대통령 세 분의 역사 인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대해 의무를 다했던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연설을 되새겨볼 만하다.
저는 오늘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광복이 이뤄졌는지 되돌아보며,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생각합니다. (…) 2005년 네 분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의 징용기업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불법행위 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최고의 법적 권위와 집행력을 가집니다. (…) 함께 소송한 세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홀로 남은 이춘식 어르신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되자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결코 나라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입니다. 동시에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원칙을 지켜가기 위해 일본과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본과 한국 공동의 노력이 양국 국민 간 우호와 미래 협력의 다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 문재인,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 2020년 8월15일
우리의 뿌리는 이 땅에서 일군 고단한 삶에 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하고, 그 자체로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전체를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민 개인의 삶을 우리 스스로 지극히 존중해야 한다. 그것은 삼자가 평가할 일이 아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 했던 김수영 시인의 일갈을 나는 그런 의미로 깨친다. 개인의 삶은 더욱 존중받고, 사회는 느리더라도 그 방향으로 발전해갈 것이다.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할 수는 있지만, 고개 숙이거나 지배당할 수는 없다. 위정자들이 남겨놓은 역사 말고, 우리의 아버지들이 힘겹게 써 내려간 개인사를 들춰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에 우리, 거대한 뿌리가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천지신명께 맹세코 사실만을 말하겠습니다. 열여섯, 열일곱 살짜리까지 징용에 끌려온 것은 당시의 관헌이 호적상의 나이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조선인 아이들 수십만 명이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그 이상으로 슬픈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다만 우리의 한심한 선조들이 서글플 뿐입니다. 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만 했을까요? - 이흥섭,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 ‘어느 날 갑자기’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대통령의 독서: 지도자는 진지한 삶과 독서로 탄생합니다. 그의 말과 글에는 마치 수면 아래 빙산처럼 오랜 시간 다져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신동호 시인이 역대 대통령들의 독서가 어떻게 말과 글에 반영됐는지 좇아가는 글을 연재합니다. 3주마다 연재.거대한 뿌리
김수영 지음, 민음사 펴냄, 1995년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박은식 지음, 초판 1920년, 상하이 유신사 펴냄
(사진은 서문당 2019년 간행본)
이홍섭 지음, 번역공동체 잇다 옮김, 논형 펴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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