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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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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는 새로운 말을 만들고, 역사를 지운다

사전에도 없는 말 ‘공산전체주의’가 태어나는 시대, 다시 꺼내든 책들
등록 2023-09-15 21:51 수정 2023-10-12 11:09
영화 <1984>의 한 장면. Film school rejects 누리집 갈무리

영화 <1984>의 한 장면. Film school rejects 누리집 갈무리

인간이 만든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은 당연히 책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쟁기와 칼은 팔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다릅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입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말하는 보르헤스〉, ‘책’

권력집중만이 목적인 빅 브러더

디스토피아를 다룬 책이나 영화들에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관료화된 사회의 획일성을 두려워한다.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이 대표적이다. 이념과 심리조작, 공포로 개인의 개성을 억압한다. 둘째는 산업사회의 경쟁으로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심판하는 경우이며, 최근에는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디스토피아가 등장한다. 소설 〈멋진 신세계〉를 시작으로 영화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인터스텔라〉가 떠오른다. 셋째는 인간 본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인간의 사랑, 정의, 진실, 연대의 정신이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핵전쟁 이후 오세아니아라는 관료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전체주의를 묘사하며 이를 보여준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처절하게 인간 본성을 돌아보게 했다.
〈1984〉의 빅 브러더는 권력집중만이 목적이다. 늘 전쟁 상태라 선전하는 일을 지배 수단으로 삼고, 사상 통제를 위해 역사를 뒤바꾸며 새로운 말(新語)을 만든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화씨 451>에는 ‘방화수’가 등장해 책과 그림을 태우며 인류의 문화예술이 형성한 사람들의 사고를 모두 함께 불사른다. 심지어 장 뤼크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에서는 금지된 단어를 사용하면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1984>는 알려져 있듯 사회주의 나라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1961년판 〈1984〉 후기에서 “만약 독자가 〈1984〉를 야만적인 스탈린 시대를 묘사한 많은 작품 중 하나로 잘난 척 해석해버리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야금야금 역사 바꾸기, 새로운 말 만들기가 벌어지는 듯해 아주 불쾌하다. 책꽂이에서 다시 〈1984〉를 꺼내든 까닭이다.
2023년 8월29일 윤석열 정부의 2024년 예산안 발표가 있었는데,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과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은 예산 코드까지 폐지했다. 앞으로 아예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6조9796억원 가운데 이래저래 독서 관련 예산을 찾아보면 독서대전, 독서진흥유공자 포상 관련 대충 12억원이다. 2023년 114억원 가운데(이것도 부족하다) 10분의 1만 남았다. 책은 국민이 알아서 읽든지, 아무튼 독서 진흥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직 국회라는 산을 넘어야 하지만, 정부 예산안만으로도 충분히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 국민과 책 사이를 벌려놓으려는 것은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찾는 일, 자각하는 일, 성찰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심사다. 이러다가 〈화씨 451〉의 결말처럼 책을 통째로 외워 후대에 전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1931년 5월 평양 대동강가 을밀대 지붕 위에서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1931년 5월 평양 대동강가 을밀대 지붕 위에서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전체주의를 분석하는 순간 공산주의자로

한편 이런 예산안을 만들면서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공산전체주의’라는 말을 쓴다. 신조어다. 누가 먼저 사용했든 간에 대통령 입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공산전체주의는 우리 삶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이미 언론에 개재됐다.(이유진 ‘사전에도 없는 단어 공산전체주의’, 신형철 ‘공산전체주의라니, 그 생경함이란’, 박세열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용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고찰’) 여기에 오웰이 〈1984〉의 부록으로 적어놓은 것을 덧붙여보고 싶다.

신어의 목적에는 영사(영국 사회주의)의 신봉자들에게 적절한 세계관과 정신적 습관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형태의 사고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되었다. (…) 부차적인 의미 또한 최대한 제거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유롭다’라는 단어는 신어에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 ‘이 들판은 잡초에서 자유롭다’라는 문장에만 쓰일 수 있었다. 과거처럼 ‘정치적인 자유’나 ‘지적인 자유’라는 의미로는 쓰일 수 없다. 정치적 자유와 지적인 자유는 이제 개념의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아서 어떤 말로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단적인 단어들을 금지시키는 것과는 별도로, 어휘를 줄이는 것이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필수불가결하지 않은 단어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신어는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좁히기 위해 고안된 언어다. - 조지 오웰, 〈1984〉, ‘신어(新語)의 원칙’

공산전체주의는 공산주의에 전체주의를 붙임으로써 전체주의를 공산주의가 아닌 체제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우리 사회를 전체주의로 분석하면 그 순간 공산주의자가 된다. 두 어휘를 하나로 줄이면서 우리 ‘사고의 폭’은 극적으로 좁아지고, 윤석열 정부 지지자들에겐 ‘적절한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게 해줬다. 오웰이 말한 신어의 목적에 잘 부합돼 보이는 탓에 더 끔찍하다.

독립운동가를 지우고 민주화·인권운동가를 지우고

문제는 ‘줄이는 것을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어휘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언어뿐 아니라 인물을 통해서도 인간의 사고력은 향상되는데, 윤석열 정부는 인물도 하나씩 지운다. 홍범도 장군이야말로 상징적이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이 지워지면 더 많은 독립운동가를 지우고, 당연한 수순으로 민주화운동가, 인권운동가, 반핵환경운동가를 차례대로 지울 것이다. 기실은 윤석열 정부가 공산전체주의의 본산처럼 얘기하는 북한도 그랬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여타의 독립운동가들은 역사에서 깨끗이 사라지고 오직 김일성과 그 일가만 남았다.

전체주의에 대응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다양한 책으로 생각을 넓히고, 다양한 어휘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다양한 인물을 지표로 삼는다. 민주주의자들은 어휘를 더해오고 인물을 더해왔다. 이루지 못한 친일 청산에서도 그랬다. 미군정과 권위주의 군부독재의 시절을 거쳐오며 친일 부역자를 기소해 엄단하고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을 국고로 회수하지 못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을 택했다. 한 명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발굴해 친일보다 훨씬 풍부한 자산으로 삼았다. 학자·작가들이 남모르는 역할을 맡았다. 이회영 일가와 신흥무관학교, 님 웨일즈 〈아리랑〉의 김산, 고정희 시인의 ‘남자현의 무명지’, 무수한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교과서 밖에서 만났다. 혼자 인정 많은 한국인의 방법이라 생각해본다.

2018년에는 여성독립운동가 강주룡이 우리에게 왔다. 그해 서점에서는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체공녀 강주룡>이 읽히고 있었다. 박서련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으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일인지 알 수 있다”고 애달프게 적었다. 약속이나 한 듯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강주룡을 우리 역사에 따뜻하게 포함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평양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반대해 높이 12m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 당시 조선의 남성 노동자 임금은 일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조선 여성 노동자는 그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저항으로 지사는 출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2007년 건국훈장애국장을 받았습니다. (…) 정부는 지난 광복절 이후 1년간 여성독립운동가 이백두분을 찾아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입니다.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 문재인,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 2018년 8월15일

기억만이 전체주의를 이길 수 있는 무기

2023년 6월 출간된 방현석 소설가의 장편소설 〈범도〉는 한 발짝 더 내디딘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개인의 존재와 역할이 소중해지듯 〈범도〉는 홍범도 장군과 함께했던, 그동안 몰랐던 인물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었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홍범도와 함께했던 신포수와 백무현, 백무아, 남창일, 차이경, 김수협, 장진댁, 금희네, 진포, 박한, 정파총, 안국환, 태양욱, 최진동… 범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다.” 소설은 홍범도 장군이 일인칭으로 이들을 이야기한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듯, 자신을 버린 땅에 많은 이를 남겨놓았다. 아마도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부른 이름, ‘범도’를 소설 제목으로 삼았으리라.전체주의는 언어를 단순화해 생각을 막고 인물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권력을 구축한다. 기억만이 전체주의를 이길 수 있는 무기이고, 상상력만이 민주주의의 자산이다. 그저 디스토피아가 소설과 영화에만 머물기 바란다.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이 정한 ‘독서의 달’이다. 지역서점에서 진행하는 750여 개의 문화 프로그램이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계속되길 또한 바란다.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독서: 지도자는 진지한 삶과 독서로 탄생합니다. 그의 말과 글에는 마치 수면 아래 빙산처럼 오랜 시간 다져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신동호 시인이 역대 대통령들의 독서가 어떻게 말과 글에 반영됐는지 좇아가는 글을 연재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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