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쇠와 피’
청와대에 들어가 ‘누리고 살지 않았느냐’며 비아냥대는 친구가 있었다. 그저 시기일 거라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 앓았다. ‘출세했다’는 말도 부정적으로 들렸다. 삶이 송두리째 뽑히는 느낌이었다. 어떤 생각과 태도로 청와대에서 일했다고 설명한들 귀담아들어줄 리 없다. 못다 한 일에 대한 아쉬움으로 홀로 외로움에 몸서리친다고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국가권력이 필수적이라 생각하는 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고, 권력 행사는 당연히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잘게 쪼개져 사방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시민의 자리에서 벗어나 ‘출세’로 여겨지는 자리가 부끄러울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에서 권력을 누리지 않았다고 하면 어불성설로 들리겠지만, 권력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일한 바보도 몇몇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런 바보들을 만든 건 1980년, 광주의 오월이다. 권력이 선량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권력이 상황을 조작하고, 시민을 빨갱이 폭도로 몰고, 때리고 찌르고 죽였다. 권력이 한 사람의 꿈을 앗아가고, 가족의 행복을 빼앗고, 국민을 배반하고, 인권을 짓밟았다. 아, 권력이.
정작 국가권력이 해야 할 일을 시민들이 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하얀 양말 수십 켤레를 가지고 와서 시신의 맨발에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신겨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양동시장에서 명태장사를 하던 김양애는 주변에서 쌀을 거둬 김밥을 만든 다음 리어카에 싣고 도청에 가져왔다.’ ‘갑자기 밀려들어온 부상자들 때문에 피가 모자라서 곤란을 겪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헌혈하려는 시민들이 몰려 피가 남아돌았다.’ 시민이 시민을 지키고, 시민이 시민을 위로했다. 또 시민이 시민의 진실을 밝혔다. 아, 시민들이.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해방기간 Ⅳ’
그렇게 바보들은 권력이 버린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주워 담는 것을 봤다. 권력을 시민들 손에 쥐여도 됨을, 그래야 함을 마음에 새겨넣었다. 그런 바보들이 회사에 다니고, 가게를 열고, 노동자가 되고, 변호사도 되고, 인권운동가가 되어 함께 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명석한 사람으로 되돌아간 이들도 있지만, 권력의 부당함을 참지 못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자진한 바보들도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광주 오월을 직간접으로 겪은 이른바 586세대의 진지한 사명감을 불편해하는 위아래 세대가 있다. 그 진지함은 어떤 부채감 때문일 수도 있고, 시민의 도덕성이라는 새 질서를 경험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꼈”기 때문에 생겼다. 항쟁 기록이 남긴 어떤 시민의 이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한 아버지의 이름, 유명인 사이에 묻힌 무명인의 이름 앞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일은 광주 오월의 유산이다. 어떤 바보들이 권력기관의 임명장을 받은 것 역시, 시민들 편에서 부패하지 않고 활동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지만, 얼마쯤의 진전 덕분인 건 사실이다.
우리는 시민을 믿는 바보들이 느리지만 세상을 변화시켜왔음을 너무도 잘 안다. 촛불을 들었던 누구이기도 하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분의 전직 대통령이기도 하다. 함께 가기 위해 내려놓은 것, 빈틈도 많다. 나쁜 권력을 청산하기 위해 권력을 나쁘게 써야 한다는 역설 앞에 언제나 머뭇대는 선의, 선의의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악의가 돌출하고, 광주 오월에 대한 왜곡은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고개를 든다. 감내해야 할 일이다. 권력을 권력답게 쓰지 못했다고 욕먹을 때마다, 체기가 온다. ‘우공이산’, 우직하고 정직하게 자기 의무를 다하는 더 많은 시민과 천천히 함께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준엄한 시민 권력은 거기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열흘 동안 광주시민들은 숭고한 일을 해냈다. (…) 불의에는 과감히 맞서되, 현실을 살폈던 광주시민들을 나는 한없이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믿었고, 영광과 좌절을 함께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와서 드디어 시민 개인의 이름을 명명했다. 시민이라는 대명사에 고유명사의 생명을 부여했다. 아직 우리는 걷는 중이다. 광주 오월이 이제 구체적인 이름이 가진 희생의 고결함과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재인,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2017년 5월18일
나도 ‘5·18들’의 말석에서 살아 있음에 괴로워한 날들이 있었다. 2017년 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좌담회’ 기조연설 작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오랫동안 감회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청와대와 검찰, 국가정보원 개혁에 대한 공약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공약 이상으로 1980년 광주 오월을 되살아나게 했다. 정부가 들어서고, 문 전 대통령은 시민의 시대를 반영하는 헌법 개정을 위해 자기 손으로 꼼꼼히 개정안을 다듬었다. 권력기관 스스로 개혁해야 진정한 개혁이라 여겼던 대통령의 마음도 잘 알고 있다. 삐걱댔고, 이뤄진 것도 되돌아가버렸다. 부질없는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계와 전망이 분명해졌으리라.
권력은 이미 시민들에 의해 작동하는지 모른다. 우리 국민은 자기 의무를 몰라 일일이 지시 내리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찾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요구, 다양한 실천이 혼재하면서 미처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온갖 모임과 소통, 자기 삶에 대한 긍지가 더해져 이렇게 저렇게 권력에 관여하는지 모른다. 자기 양심에 따라, 자기 이름을 내걸고, 또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릴지 모른다. 다시 오월이다. 오월을 잊지 않도록, 희망을 잃지 않도록, 광주와 함께 끊임없이 되살아온 분들에게 고개 숙인다.
―한강, 〈소년이 온다〉 ‘눈 덮인 램프’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창비 펴냄, 초판 1985년
한강 지음, 창비 펴냄,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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