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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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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드는 마음은 달라도, 통합은 가능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93년>이 보여준 ‘도덕적 투쟁’
정치인은 먼저 도덕적 인간이 돼야 통합 이뤄낼 수 있어
등록 2023-05-19 07:47 수정 2023-06-13 14:56
2017년 6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에 헌화한 뒤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6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에 헌화한 뒤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저에게는 용서라는 말이 인간의 언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빅토르 위고, 〈93년〉, ‘세 아이’

빅토르 위고는 젊은 시절 정통왕조주의자였다. 이후 자유주의 성향을 가졌다가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겪으며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가 됐다. 위고의 소설 〈93년〉은 1789년 혁명 후 4년이 지난 1793년 프랑스 서부 방데 반란을 배경으로 하는데, 위고의 이력을 상징하는 세 주인공이 등장한다. 늙은 귀족 랑뜨낙은 왕정복고주의자로 농민군을 이끌고, 혁명의회가 파견한 젊은 장군 고뱅은 공화제를 지지한다. 씨무르댕은 사제이며 고뱅의 정치 참모다. 반대자의 죽음이 있어야 정치적 재건이 가능하다고 믿는 냉혈한이다.

“용서할 수 없다면 승리할 필요조차 없다”

왕당파와 공화파의 싸움은 이해와 관용이 없다. 방데에선 철저한 응징으로 어느 편이든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병든다. 위고는 말한다. “타국과의 전쟁이란 팔꿈치에 입은 찰과상에 불과하지만, 내전은 우리의 간을 먹어치우는 궤양이오”라고. 뚜르그성에서의 마지막 전투로 공화파가 승리한다. 한때 랑뜨낙 후작이 조카 고뱅을 돌보고, 씨무르댕이 고뱅의 가정교사로 함께 거처했던 성이다. 랑뜨낙은 탈출할 수 있었지만 불타는 서재에 갇힌 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체포됐다. 고뱅은 랑뜨낙의 행동에 감화돼 그를 살리고 대신 단두대에 선다. 혁명의 순수성에 충실한 씨무르댕은 고뱅의 죽음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고뱅의 잘린 머리가 바구니로 굴러떨어지는 순간, 자기 가슴에 총을 쏜다.

소설은 비극으로 끝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위고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도 개인이 바꿀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 희망은 저마다의 ‘도덕적 투쟁’이다. 랑뜨낙, 고뱅, 씨무르댕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은 모두 숭고한 미덕으로 시대와 맞섰다. 고뱅의 용서는 거대한 역사와 다른 도덕적 논리를 역사에 새겼다. “용서할 수 없다면 승리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전투 중에는 우리가 적들의 적이되, 승리를 거둔 후에는 그들의 형제가 됩시다.” 한 영혼의 어둠을 다른 영혼의 광명이 감싸며 비로소 한 시대가 온전히 구성됐다. 1874년에 출간된 소설을 아직 우리가 읽는 이유이다.

통합은 언제나 막연하고 조금은 거창하게 들린다. 정치지도자라면 누구나 ‘국민통합’을 외치지만 진정으로 사회를 개선하려는 것인지, 진전을 위한 열망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통합 뒤에서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경제적 격차를 더욱 심화한다면 그것은 한낱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했고, 용서를 실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으로 격차를 줄이려 했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기득권과 싸운 노무현 정신을 배우겠다” 했고,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그런데 왜 양극화는 깊어지고 갈등은 점점 커질까. 왜 자꾸 뒤돌아 갈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통합은 모이다가도 흩어지는 새떼 같아

통합은 새떼의 비상 같다. 흩어졌다 모이고 한곳으로 향하다가 다시 흩어진다. 삶이 그렇듯 한결같을 수 없다. 제각기 원하는 대로 흘러가다가 때때로 경이롭게 뭉친다. 통합은 정치적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정치에서 통합은 흔히 전제주의로 빠지기 쉽다. 통합은 개인의 ‘도덕적 투쟁’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 보수든 진보든, 20대든 70대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모두 나름의 생각과 삶이 있다. 보수에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있고, 전통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다. 진보에는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 있고, 역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있다. 통합은 저마다의 정직한 삶을 기반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일에 달렸다.

오늘날 맹자의 정신을 이어받은 보수주의자들은 재산과 신분에 의해 지지되던 그 권위를 잃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도덕적 인간으로 갖는 자존감과 모든 인간을 숭고한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그를 위한 헌신이다. - 이혜경,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환영할 만한 보수주의자의 모델’

개인은 성장하고 개인의 이성은 확장됐다. 보수는 개인이 자신의 이성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본다. 자신을 성장시켜줄 전통과 공동체가 개인의 존재를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평등이 자유를 위협한다고 여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좋은 삶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도덕적 가치를 수호할 때 해당하지만 말이다. 랑뜨낙 후작의 태도는 숭고한 보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념에 동감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그의 삶 전체를 존경할 수 있게 한다. 전통에서 비롯된 고귀함, 숙련된 유능함, 고결한 성품에 다가가게 한다.

“어머니는 자신을 낮춰 품위를 지켰다”

한국의 진보는 장준하 선생의 일대기, 문익환 목사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도덕적 태도에 빚졌다. 독재정권이 보여줄 수 없는 다른 삶을 통해 민주주의와 진보 운동 전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많은 이가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도덕적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더디더라도 진보가 그늘진 곳의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루마니아의 소설가 헤르타 뮐러는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에게 맞서 많은 친구를 잃었음에도 인간의 품위가 만들어내는 ‘도덕적 투쟁’의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고뱅의 용서가 어떻게 우리 옆에 살아 있는지 보여준다.

내가 망명하기 직전, 어머니는 아침 일찍 마을 경찰관에게 소환되었습니다. (…) 경찰관이 채근하는데도,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손수건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 경찰관은 방을 나가면서 문을 잠갔고, 어머니는 하루 종일 그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처음 몇 시간 동안 어머니는 책상 앞에 앉아 울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방 안을 서성거리다가, 눈물 젖은 손수건으로 가구의 먼지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경악했습니다. “뭣 때문에 파출소를 닦아줘요?” 어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시간을 보낼 일거리가 필요했거든. 그런데 사무실이 너무 지저분하더구나. 큼지막한 남자용 손수건을 하나 가져갔다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더욱 낮춤으로써 구류 상태에서 품위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야 이해합니다. ― 헤르타 뮐러, 〈저지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여전히 우리는 통합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자신만이 잘할 수 있다는 오만, 권력부터 잡고 나서 잘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조급해지고 있다. 분열을 뛰어넘는 언어란 무엇일까. 정치적인 이합집산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 지도자는 어떤 말을 국민에게 해야 할까. 2017년 현충일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애국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 방법이 다를 뿐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애국으로 통합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공허한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개인의 헌신을 이어주는 일이 그 출발점은 될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애국엔 보수·진보 없다” 존중 역설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 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 위에서 펄럭였습니다. 파독 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서해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두가 애국자였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도상의 화해를 넘어서 마음으로 화해해야 합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입니다. (…)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바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데 앞장서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이 나라의 이념 갈등을 끝내주실 분들입니다.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 갈등을 끝내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입니다. ― 문재인, ‘제62회 현충일 추념식’, 2017년 6월6일

<93년>, 방데는 신념에 의한 싸움으로 치열했지만 결국 미덕으로 형제가 됐다. 각자 태극기를 드는 마음은 달라도, 통합은 가능할 것이다. 태도로 경쟁하고, 미덕으로 다가가 서로를 존중한다면 말이다.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독서: 지도자는 진지한 삶과 독서로 탄생합니다. 그의 말과 글에는 마치 수면 아래 빙산처럼 오랜 시간 다져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신동호 시인이 역대 대통령들의 독서가 어떻게 말과 글에 반영됐는지 좇아가는 글을 연재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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