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흔들리며 바로 서는 청년 보수, 천하람

부끄러워할 줄 알고 연대할 줄 아는 진화한 보수, 나의 ‘반려 정치인’
등록 2023-01-16 08:19 수정 2023-01-17 06:16
김진수 선임기자

김진수 선임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미안한 게 많지만, 대연정을 씹은 건 진짜 두고두고 미안하다. 그때는 잘 몰랐다, 깊은 뜻을. 동거 정부까지는 아니라도 대화와 타협을 정착시켜 다수파 정당이 내각 구성에 일정한 권한을 갖는 경험을 했다면 우리 정치가 어땠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다소 ‘우연히’ 꺼내든 ‘중대선거구제 필요성’을 접하자, 2003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간곡히’ 꺼내든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해달라”던 요청이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여야가 선거법을 고치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 혹은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면 지역정당 구도를 깨야 하고 그러려면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를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봤다. 그걸 위해 대통령 권력까지 내놓겠다고 한 것이다.

정권 한 번 더 잡는 것보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노무현의 뜻을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그러지 않은 정치가 세월이 흘러 어떻게 되는지 본다. 양당이 적대적 공생을 넘어 급기야 서로의 멱살을 움켜쥐고 ‘네가 먼저 놔라’ 식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기득권을 내놓지 않은 정치개혁 구호나 선거제도 개편 방안은 립서비스이거나 헛소리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겠다.

벽두부터 부대낀 새해, 고맙고 아껴주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못지않게 안정감을 준다.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 천하람(사진)을 내 맘대로 내 ‘반려 정치인’으로 삼기로 했다. 어느 때보다 줄서기가 횡행한 집권여당 안에서 그는 꽤 다부지게 ‘자기 정치’를 한다. 이런 단독자, 오랜만이다. 박정희보다 김대중을 더 좋아한다는 보수 청년 정치인이다.

나보다 젊으니 든든하다. 순천과 서울을 오가는 걸 보니 부지런한 건 물론이고 튼튼해 보인다. 대구 출신인 그는 2020년 총선 때 수도권 공천을 기대했으나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자 미련 없이 연고 하나 없는 불모지에 깃발을 꽂았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인 용기, 패기, 호기 그리고 한 줌의 똘기까지 고루 갖췄다. 당을 가리지 않고 할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확신에 차 있지 않다. 흔들리고 망설인다. 고민하고 부끄러워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큰 즐거움이다.

그가 여야의 젊은 정치인들과 30년 뒤를 내다보며 만든 모임이 ‘정치개혁 2050’이다. 이들은 낡은 소선거구제를 바꾸자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양당 독점을 굳히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지도부에 잘 보여 ‘내리꽂히지’ 않는 한 자력으로 성장할 수 없다. 지역구에서 한 명만 뽑아야 하니 표심의 절반 이상이 가뭇없이 사라진다.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출마자도 유권자도 지레 포기한다. 민심은 자꾸 왜곡된다. 그리하여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은 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없다고 여긴다.

없으면 키우는 수밖에. 좀 멀어도 상관없다. 물리적 이격도, 정치적 이견도 괜찮다. 중요한 건 설득되는 마음이니까. 뽑아주고 싶은 마음. 왠지 내 노후를 챙겨줄 것 같은 마음. ‘보수민주투사’가 양산되는 시대에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마음. 단 한 치의 변화를 위해 누가 먼저 멱살 쥔 손의 힘을 빼는지, 자기 것을 내놓는지, 슬그머니 움직이는지, 유심히 보고 오래 기억하려 한다. 그래야 정치인도 더 겸손해지고 더 유능해지지 않을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