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어디에나 있다. 만약 어느 특정 구역에 또라이가 안 보인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바로 그 구역의 또라이라서다.
연말의 어느 날 점심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의 한 해물탕집. 내 바로 뒷자리에서 큰 소리의 대화가 오갔다. 주변 사람은 맞장구치고 ‘윗분’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주로 ‘내가 낸데’ 식으로 떠들었다. 쓱 보니 낯익은 정치인이었다. 그들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재인이 맞으라 해서 나는 백신도 안 맞았다” “(곰이와 송강이는) 안락사시켰으면 간단한걸” 따위 ‘망언’ 퍼레이드를 밥 먹는 내내 들어야 했다. 아니, 정치한다는 ××가 다중시설에서 이런 ×소리를 늘어놔도 되는 걸까? 내 표정을 읽은 일행의 만류로 다행히 나는 그날 그 구역의 또라이가 되지 않았다.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또라이는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지금 국민의힘에도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나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당대표는 나인가? 윤심이 실린 사람은 나인가? 이 바람은 전염성이 강하다. 벌써 여럿 감염됐다. 더 센 변종도 등장했다. “나구나!” “나밖에 없어!”
자칫 전당대회가 내년 3월이나 5·6월이 아니라, 다음달 3일이나 5·6일인 줄 알겠다. 새해 예산도 10·29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팽개치고 ‘김장연대’니 ‘권장연대’니 매달린다. 당대표 뽑는 전당대회 룰에 앞다퉈 골몰한다. 당심(당원투표) 70%, 민심(여론조사) 30%인 현행 룰을 당심 90%나 100%로 바꾸자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오죽하면 이를 반대하는 안철수 의원이 멀쩡해 보이고 국회에서 뭐라도 하려고 든 주호영 원내대표가 훌륭해 보일까. 놀라운 필터 효과이다.
이들은 왜 그럴까? 그래도 되는, 그래야 하는 분위기라 그렇다. 그럴수록 윗분은 좋아하고 윗분에게 잘 보일수록 자기에게 유리하니까. 해물탕집 윗분이든 여당의 실질적인 윗분이든 말이다.
우리나라 보수우파 정당에는 늘 이런 식의 ‘일극체제’가 작동한다. 단 한 사람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줄을 선다. 이념이나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은 당장의 이익과 장래보장성 보험이 작동하는 거대한 ‘이권 구조’이다. 위계와 서열이 분명하고 간극도 뚜렷하다. 같은 순서나 칸에 있어도 혈연·지연·학연, 그리고 최근 강력하게 등장한 업연(!)에 따라 곁불 온도가 달라진다. 그나마 정치를 좀 아는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이라도 썼는데 정치를 잘 모르는(혹은 싫어하는) 대통령 치하에서는 의례적인 ‘정치적 제스처’마저 실종됐다. 그 결과 우리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권력자를 향한 충성 경쟁을 목도한다.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자기 내용과 비전으로 경쟁하기보다 지금 당장 권력자의 심기를 살피는 눈치와 아첨으로 점철하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눈에 들려고 무리수를 둔다. 심기를 거스르는 이들을 짓밟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어렵게 발족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 대해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권성동)다고 하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놓고는 “애초 (야당과) 합의해줘서는 안 될 사안”(장제원)이라 한다. 미치광이 전술이 아니고서야 여당의 다선 의원들이 할 소리인가.
단 한 명의 마음에만 들면 당권을 쥘 수 있다는 망상을 이준석 전 대표 이후 새롭게 가입한 국민의힘 당원들이 깨줬으면 좋겠다. ‘깜’도 안 되는 이들이 괴벨스 같은 소리만 하니 안 그래도 불안한 윤석열 정부가 더 욕먹는 것이다. 욕하더라도 적당히 하고 싶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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