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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왜 국민에게 신경질을 내나

사사건건 전 정권과 비교… 이러다 “전 정권은 그 전 정권 탓 더 했다”고 할라
등록 2022-07-08 17:15 수정 2022-07-09 01:52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보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보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푹푹 찌는 와중에 납량 소식 하나 전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다는 사실이야.” 한 친구의 이런 안부 ‘까똑’에 다른 친구가 답했다. “으, 그만해. 더 더워.”

친구들과 나는 나토 정상회의에 다녀온 대통령 내외의 B컷 사진들이 공개되자마자 눈치채버렸다. 이 사진을 고른 이는 적어도 199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조크든요’ 감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구도며 시선에서 무엇을 돋보이게 하려는지 느낌 훅 온다. ‘쿨내 진동’을 위해 뜨겁게 애쓴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대통령 열일하시고요, 여사님 우아하시고요, 두 분은 쿨하고 다정해요.

21세기의 대통령실에서 20세기 느낌으로 일하는 실무진을 따로 두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때 그 감성’의 소유자가 있는 걸까? 그 또래인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만약에, 혹시나, 김건희 여사가 이런 식의 홍보에 관여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종종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타임슬립’을 경험할 것 같다.

대통령은 칭찬에 민감한 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했다. 머나먼 유럽 출장에 다녀오신 분에게 지지율 반등은커녕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를 대뜸 안겼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지난 정권에 여러모로 콤플렉스가 있는 분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2022년 7월4일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어찌할지 묻는 말에 “빈틈없이 사람을 발탁했다고 자부한다”며 난데없이 “전 정부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라고 동문서답했을 리 없다. 그다음 날에는 만취운전 경력으로 여당 안에서도 우려가 나왔던 박순애 교육부 장관 등을 놓고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며 날을 세웠다. 그는 이날 성급히 질문을 끊거나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고 다소 감정적으로 손가락을 흔들기도 했다. “지지율은 큰 의미 없다, 국민만 생각한다”고 애써 의연한 척했지만, 하루 만에 의연하지 않은 심경을 온 국민이 봤다.

빠른 결단과 실행력이 나름 검찰 시절부터 갈고닦은 대통령의 장점일 텐데 인사 난맥과 부실 검증에서는 그게 영 작동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고집과 오기가 도드라진다. 본인도 의식하는 것 같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없이 임명을 강행한 교육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대통령은 “언론과 야당의 공격 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며 “소신껏 잘하라”고 못박듯이 말했다. 어떤 심정이었는지 신임 장관은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두 달 넘도록 내각 구성조차 온전히 못하고 있다. 부적격자를 제대로 걸러내지도 빠르게 주저앉히지도 못했다. 공사를 뒤섞는 건 내내 화근거리다.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가 기타 수행원으로 해외 순방에 동행한 것이 알려지자, 대통령실은 처음엔 “무보수의 자원봉사자”라더니 그 뒤엔 “전체 일정을 기획하고 지원했다”고 말을 바꿨다. 아니, 무슨 자원봉사자가 순방 일정을 기획하고 지원하나. 억지스럽게 일하고 그걸 또 감추려다보니 탈이 나는 것이다. ‘그럴듯한 포장’에 급급해 사적 인연을 끌어올 게 아니라 ‘내용에 충실하게’ 참모진을 잘 꾸리고 충언을 들을 일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으나 상대만 보고 해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 마음속의 ‘준거 집단’ 혹은 ‘준거 인물’은 온통 전 정권과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여당 안에서도 쓴소리가 나올까.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민주당도 그러지 않았느냐’는 대답은 민주당의 입을 막는 논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국민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다가 대통령 입에서 조만간 ‘전 정권도 그 전 정권 탓했다’ ‘문재인은 박근혜 탓 더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혹시 대통령은 아직도 전 정권과 싸우는 중이신지. 당신은 이겼고, 우리는 진도를 나가야 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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