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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게 뭘 아냐고요? 정치 5년차입니다”

10대가 후보로 나온 첫 선거, 연령이라는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선거비용 문제 등은 여전
등록 2022-06-04 15:05 수정 2022-06-05 01:42
10대의 나이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신은진 진보당 후보가 2022년 5월31일 경기도 성남 중원구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10대의 나이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신은진 진보당 후보가 2022년 5월31일 경기도 성남 중원구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경기도 도비례후보 열아홉 살 신은진입니다!”

6·1 지방선거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022년 5월31일. 경기도 광역의원 비례대표(도비례) 후보로 출마한 신은진 진보당 후보가 성남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앞에 섰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신 후보는 선거운동복의 양쪽 소매를 걷어붙였다. 선거권이 있는 만 18살 학생이 누군지 구분할 수 없기에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나가거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가는 학생들 사이로 신 후보가 바쁘게 명함을 건넸다. “이번에 출마했어요!”

그는 2022년 2월 특성화고를 졸업했다. 10대 후보(만 19살·2003년 2월생)로 이번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특성화고 학생 누구나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정치를 통해서라면 특성화고 청소년이 겪는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알리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청소년을 정확히 대변하고자

이번 지방선거에는 신 후보를 포함해 만 18~19살인 10대 후보 7명이 출마했다. 김경주·오신행(기초의원 지역구), 천승아(기초의원 비례대표), 노서진·신은진·이건웅·이재혁(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다.

10대 후보 출마는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2021년 12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피선거권 연령 기준이 만 25살에서 만 18살로 낮아졌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 표심을 의식한 여야가 속전속결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10대가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 첫 번째 무대였다. 선거 결과, 당선자는 비례대표 1번으로 추천돼 당선이 유력했던 경기도 고양시의원 천승아 후보(2002년 11월생·국민의힘) 한 명뿐이지만, 겁 없이 선거에 뛰어들어 끝까지 완주해낸 나머지 10대 후보 6명의 선거운동 일지를 기록한다.

5월30일 전남 무안에서 만난 오신행 후보(무소속 전남 무안 군의원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며 자신을 ‘청소년 후보’라 소개했다고 말했다. 생년월일(2004년 5월3일)로 보면 그는 10대 출마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적다. “한 달만 늦게 태어났더라도 출마 못했을 텐데 다행이죠.(웃음) 청소년보다 청소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후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출마 시기가 ‘지금’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10대로서 10대를 대변할 수 있는 바로 지금이 적기라는 거다. 후보들은 ‘지금까지 청소년 목소리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선거판에 뛰어들었고 ‘청소년 맞춤’ 공약도 마련했다.

신은진 후보(진보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 지원 조례’ 제정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성화고 학생으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서 활동해온 그는 현장실습 예산 확대, 고졸노동자 공공부문 의무 채용을 약속하는 등 “특성화고 문제 해결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위해 선거에 나왔다. 이재혁 후보(정의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학교밖 청소년으로 지낸 2년여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학교밖 청소년까지 포괄하는 청소년인권조례로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청·장년층은 청소년기를 거쳐왔어도 나이가 들면 그 시기를 망각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청소년 의제는 소외되고 잊혀왔어요. 제가 출마한 이유는 그래서예요. 지금 나만이 할 수 있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이재혁 후보)

특성화고, 학교밖 청소년 등 정책 사각지대를 비추는 시도는 기후정의 문제까지 나아갔다. 기후정의를 위한 지자체의 책임과 권한은 더 강해졌지만 선거에서 기후정의 이슈는 실종됐다. 전국 기후환경단체와 대학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이 진행한 ‘청년이 바라보는 지방선거 기후공약 프로젝트’에 따르면,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들이 낸 기후공약은 전체 공약(568명이 낸 5대 공약 2760개)의 4.5%(124개)에 그친다. 이건웅·노서진 후보가 기후와 관련한 ‘1호 공약’을 내세워 주목받은 이유다.

이건웅 후보(녹색당 제주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조례 제정’ 공약에 강조점을 뒀다. 녹색당이 마련한 비례대표 정책공약으로,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을 부여해 말 못하는 돌고래를 대신해 사람이 대리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게 하는 제도다. 그는 2016년 제주해군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난개발로 몸살 앓는 제주를 보며 자랐다.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역인 서귀포시 표선면에 사는데, 제2공항 건설 문제에 관해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바라는 아버지와 입장이 엇갈린다.

“당장의 5년은 풍요로울지 몰라요. 하지만 나무들 베어가며 만드는 제2공항이 10년, 20년 뒤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건물이 될까요. 더 오래 살아갈 청소년으로 먼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노서진 후보(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청소년 무상교통을 시행하고 버스·지하철과 서울자전거 따릉이 간 환승 제도를 도입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기후위기 체험 교육, 채식 급식 지원도 약속했다. “청소년 세대는 기후위기에 기여한 게 많지 않음에도 역설적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잖아요. 지방선거를 계기로 내가 사는 이 지역부터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10대 후보자들. 왼쪽부터 오신행·노서진·이재혁·김경주·이건웅 후보.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10대 후보자들. 왼쪽부터 오신행·노서진·이재혁·김경주·이건웅 후보.

정당 가입 가능 연령도 만 18살에서 16살로

후보들은 선거운동에 나설 때마다 “부모님 선거운동을 도우러 나왔냐” “선거운동 아르바이트하냐”는 공통의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 본인”이라고 설명하면 때로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나이가 어린데 뭘 알겠나.” 그러나 무소속 오신행 후보를 제외한 5명의 후보 모두 정당에 입당해 4~6년간 활동한 ‘정치 경력자’다. 정당 청소년 공동대표나 청소년위원회 위원장 같은 직함을 달고 있다.

이재혁 후보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18년 5월 정의당에 입당했다. 2017년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심상정 후보가 최후의 1분을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에 쓰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도 사회적 소수자를 존중하는 정당이 있구나’ 처음 알게 됐다. “정치에 막연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당원이 된다면 현실정치와 좀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기대와 호기심이 있었어요.”

중학교 3학년이던 2019년 겨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채 정당 안팎에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다. 2020년 정당 대의원회에서 청소년 예비당원의 당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확보하고, 2021년 학교밖 청소년을 교육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데 힘썼다. “어린데 뭘 알겠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정당에 몸담은 지 5년차인데요, 다른 후보들에 비해 경험이나 능력 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곤 해요.”

과거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은 만 18살로 제한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등은 만 18살 미만 청소년은 정식 당원이 아닌 예비당원 등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후보들은 정당 활동으로 자신의 권리나 의무, 법·제도에 관한 지식과 활용법, 이슈 의제화 과정을 익혔다.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자마자 바로 출마가 가능했던 이유다.

피선거권 연령 낮아졌다고 당장 출마할 수 있나요

청소년 정치참여의 저변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추세다. 2019년 12월 선거권 연령이 만 19살→18살로 하향되면서 이듬해 4월 국회의원선거 때 18살 청소년이 처음 투표에 참여했다. 2021년 12월 피선거권이 만 25살에서 18살로 낮아졌고, 2022년 1월 정당 가입 연령도 만 18살에서 만 16살로 조정됐다. 그러나 만 18살 미만인 사람이 정당에 가입할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항이 폐지되고,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이 만 16살로 더 하향되는 등 청소년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갈 길은 멀다. “피선거권 연령이 낮아졌다고 당장 출마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누구나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당 가입 연령 제한 같은 참정권 제한이 사라지고, 정당 내에서도 청소년 정치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등 실질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이진영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후보들도 정치 진입장벽이 실질적으로 낮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주 후보(더불어민주당 경주시의원 후보)는 선거비용 부담이 컸다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후보(선거일 기준 29살 이하)는 일반 후보와 달리 정해진 기탁금(출마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내야 하는 돈)의 50%를 납부하면 되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청소년 후보가 100만원 넘는 돈을 자비로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김 후보는 선거사무실 임대비(200여만원), 선거사무원 인건비(500여만원) 등 선거비용을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장학금을 끌어다 쓰고 친척에게 1천만원도 빌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후보는 유효투표 총수가 전체 투표의 10% 이상이면 후보가 쓴 돈의 전액, 5%면 절반이 지원된다. 일반 후보의 선거비용 보전 기준은 득표율 15% 이상이다. 김경주 후보는 득표율 10%를 넘겨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선거사무실 임대비 같은 모든 항목이 다 보전되는 건 아니다. 예비후보 때 쓴 돈은 아예 제외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은선 활동가는 “연령이라는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선거비용 문제는 여전하다. (기탁금이나 선거비용 보전에서 혜택을 받더라도) 청소년이 독립적인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출마가 가능한 청소년은 극히 제한된다. 연령에 이어서 또 한번 자격을 묻는 것이다. 이전에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위치에 있던 청소년을 환대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을 환대하는 제도적 지원 더 필요해”

6·1 지방선거는 끝났다. 비례대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는데, 정의당이나 진보당, 녹색당은 5%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었다. 김경주 민주당 후보는 3위(1522표·15.75%), 오신행 무소속 후보는 6위(990표·5.88%)에 그쳤다. 그러나 청소년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난다 상임활동가는 “대다수 학생은 중고등학교에서 정당 활동이나 사회참여 활동이 학칙으로 금지돼, 대다수 청소년의 보편적 권리로서 참여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한 후보들이 대다수 학생의 정치참여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성남=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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