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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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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심상정, 이번에는 정주행!

거대 양당의 정치적 가스라이팅에 유권자 스스로 선택지를 좁혀온 건 아니었나
등록 2021-11-17 19:05 수정 2021-11-18 09:38
2021년 11월10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을 출발해 이날 도착한 도보행진단과 포옹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11월10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을 출발해 이날 도착한 도보행진단과 포옹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동네 동생이 2017년 대선 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유세 현장에 이른 시간부터 갔다. 아이들이 어려 촛불시위조차 제대로 못 나가봤으나 큰애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거동’이 자유로워진 덕이다. 심 후보가 자기 막내 이모를 몹시 닮았다고 했다. 그 이모는 온갖 사고는 다 치고 살았으나 어린 조카에게는 한없이 마음이 넓어 쫀드기나 아폴로 같은 걸 자주 사줬고 틈틈이 오락실 갈 돈도 쥐여주었단다. 인생 최초의 ‘일탈’을 후원하던 이모와 닮은 심 후보와 포옹하면 ‘독박 육아’라는 인생에서 가장 ‘엄정’한 시간을 보내던 자신에게 선물이랄까 위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으나 나름 비장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어 데려간 둘째가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쉬야’가 마려운 바람에…. 포옹은커녕 손도 못 잡아보고 귀가해야 했다는 슬픈 사연이다.

당시 심상정과 포옹했던 이들은 꺅 웃으며 안았다가 끝내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젊은 여성이 많았다. 갑질에, 희롱에, 이런저런 위험에 처한 이들은 대놓고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으나 누가 내 편인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이들은 심상정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오른 소식이 들리면 “웬일이래?”라며 여기저기 퍼나른다. 조용하나 꾸준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호칭은 하나다. 심 언니.

가‘심’비 좋은 정치인 심상정이 선거대책위를 꾸리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완주할 태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대선은 두 거대 정당이 누굴 꼭 대통령으로 세우겠다는 의지보다는 누굴 꼭 떨어뜨려야겠다는 ‘부정 감정’이 팽배한 상태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두 당의 후보도 정해지고 급기야 유력한 둘 중 누가 돼도 걱정인 상태에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공약보다는 비유에 공들이는 듯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상황을 일찍이 정리했다. “나쁜 놈, 이상한 놈, 추한 놈밖에 안 보인다.” 그는 나아가 “음주운전, 초보운전”을 언급해 ‘무면허 운전’까지 ‘자동 완성’시키기도 했다. 놈놈놈 사이에 멀쩡한 언니가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나는 심상정의 공약 가운데 ‘살찐 고양이법’으로 부르는 최고임금법을 가장 지지한다. 법인 임직원의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일정 배수 이상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법이다. 제아무리 임원이라도 그가 신입사원보다 30배 넘게 일하는 건 아니다. 국회의원이 국회 청소노동자보다 5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나? 필수노동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청소노동자가 하루 쉬면 난리 나지만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하루 쉰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임금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차별과 지위의 격차를 줄이는 데, 그리하여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실패해왔다. 아집과 무능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했다. 스스로 기득권을 지니고도 기득권과 싸운다고 자기를 규정했다. 그리하여 우리 정치는 장르가 바뀌어버렸다. 이른바 ‘진보 우파’와 ‘보수 좌파’가 대립하는 하이브리드 형국이다. 촛불 이후 불과 4~5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 와중에 심상정만 꿋꿋했다. 장르가 심상정이다.

정치 이력으로 따지면 후보들 가운데 심상정이 가장 베테랑이다. 20년 이상 정치했다. 단지 당이 작다는 이유로 제3지대니 단일화니 나누고 붙이는 것은 ‘정치꾼들’과 ‘언론사 놈들’의 게으르고 안일한 수작이다. 같은 이유로 안철수도 보란 듯이 완주하면 좋겠다. 정치공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거대 양당 체제에 익숙해지다 못해 길든 것 같아서 그렇다.

일종의 정치적 가스라이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교묘하게 상황을 두 당 중심으로 만들어서 마치 두 당 아니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유권자 마음을 조종한다고나 할까.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결과에 따라 양쪽 모두 후보가 낙마할지도 모를 지경인데, 대체 이보다 더 나빠질 게 뭐가 있다고 우리 스스로 그렇게 선택지를 좁혀왔을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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