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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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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대선 경선, 정의의 이름으로 판을 갈겠노라

심상정 “마지막 소임”, 이정미 캠프 “대표선수 바꿔야”
정의당 대선 후보 10월6일 결정, 결선 땐 10월12일 확정
등록 2021-09-20 11:24 수정 2021-09-23 02:28
정의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심상정 전 대표(왼쪽)와 이정미 전 대표.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정의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심상정 전 대표(왼쪽)와 이정미 전 대표.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이제는 34년 묵은 낡은 양당체제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심상정 후보, 8월29일 대선 출마 선언문)

“기득권 양당정치의 판을 갈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겠다.”(이정미 후보, 8월23일 대선 출마 선언문)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없다”

정의당 심상정·이정미 전 대표가 나란히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고 노회찬 전 의원의 ‘거대 양당 판갈이론’(2004년 총선)을 소환했다. 두 후보가 내세운 판갈이론의 핵심은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의 공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진보 노선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제20대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민주당과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결국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어 개혁을 무력화한, 쓰디쓴 경험을 맛봤다. 또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때 사실상 찬성 입장을 밝히는 등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금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의 존재감은 20대 국회에 견줘 크게 축소됐다. 2021년 8월22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는 “낡은 (거대) 양당 기득권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독자적 정치노선을 추진”한다는 기조를 결정했다. 독자적 정치노선으로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한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 해소를 대선 핵심 의제로 제기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정의당 대선 후보로 나선 심상정·이정미 전 대표는 모두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후보는 이번이 네 번째 대선 도전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권영길 의원에게 패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진보정의당 후보로 나섰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다. 2017년에는 정의당 후보로 완주해 6.2%(200만 표)를 득표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번에 당내 경선을 통과한다면, 대선 본선 재수생이 되는 셈이다. ‘또 심상정이냐’는 일부 반응에 대해 심상정 캠프 관계자는 “(이재명, 홍준표, 유승민 등) 이번 대선은 재수생이 트렌드”라고 반박했다. 심 후보도 이런 비판적 반응을 의식한 듯 “(이번 대선에서) 정치인 심상정의 마지막 소임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그 소임을 위해 제1호 공약으로 ‘신노동법’(일하는 시민 기본법) 제정을 내놨다. 모든 시민이 일할 권리, 여가의 권리, 단결할 권리 등 ‘신노동 3권’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내용 중 ‘주4일 근무제’(주 32시간 노동)가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2003년 ‘주5일 근무제’(주 40시간 노동)로 근로기준법을 개정(이후 8년에 걸쳐 단계적 시행)한 이후 18년 만에 주4일제가 논의되는 것이다. 심 후보는 “한국은 지독한 과로사회”라며 “‘워라밸’이 삶의 중심인 현대인의 생활방식에 맞춰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또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 우려가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주당 최소 16시간(2일) 이상의 노동시간을 보장하는 ‘최소노동시간보장제’와 국회의원 임금은 최저임금의 5배, 공공기관 임원은 7배로 제한해 소득격차를 줄이는 ‘최고임금제’(일명 살찐고양이법)도 신노동법에 담았다. 기후위기 공약으로는 ‘구해줘 지구 5050플랜’을 제시하며 2030년까지 탄소배출 50% 감축을 법제화하고, 재생에너지를 전력생산의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현재 대선판에서 정의당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심 후보는 어떻게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심상정 캠프 관계자는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의 정당득표율은 9.7%로, 역대 최고치였다. 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종잣돈 삼아 낡은 진영 논리가 아닌 불평등, 기후위기 등 미래 비전을 놓고 심 후보가 강한 면모를 보이는 텔레비전 토론 등에서 준비된 존재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 대통령, 페미니스트 대통령

이정미 후보는 이번이 첫 대선 등판이다. 당내 주류인 인천연합 출신인 이 후보는 정의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했고, 2017년부터 2년간 당대표로 당을 이끌었다. 당대표 재임 기간에 노회찬 전 의원의 죽음(2018년 7월), 선거제도 개혁 촉구 9일 단식(2018년 12월), 창원 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2019년 4월)에서 여영국 후보(현 정의당 대표) 당선 등 굵직한 일들을 겪었다. 이 후보의 강점과 관련해 이정미 캠프 관계자는 “이 후보가 당대표 때 당의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준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현재도 대선 후보로서 지쳐 있는 당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돌봄 혁명’을 통해 ‘돌봄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의 각자도생과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덮친 상황에서, 단순히 몇 개의 돌봄정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협력해 서로를 돌보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 후보는 “돌봄 사회는 민주당이 시혜적으로 바라보고, 국민의힘이 탈락시켜온 사회적 약자를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온당하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이 후보는 “성평등을 위한 어떠한 제도도 지도자가 만드는 사회적 공기를 대신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공약했다. 그는 페미니스트 정치 실현 방안으로 △이른바 ‘정상 가족’ 밖 사람들에게도 국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 ‘생활동반자법’ 제정 △40% 차이 나는 남녀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남녀 동수 내각 실현 등을 제시했다.

인지도가 더 높은 심 후보보다 이 후보가 정의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정미 캠프 관계자는 “이제는 정의당의 대표선수가 바뀌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가 있다. 또 21대 총선 패배와 이후 새 당대표의 불명예 퇴진 등을 겪은 뒤 치르는 첫 주요 선거인 만큼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의제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 심 후보가 무난하게 경선을 통과하는 것보다 이 후보가 심 후보를 뛰어넘어 정의당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이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투표 10월1일 시작

정의당 대선 후보 경선은 심·이 후보와 김윤기 전 정의당 부대표, 황순식 경기도당위원장 4파전으로 치러진다. 정의당 5만여 당원이 10월1일부터 5일까지 온라인투표, 6일 ARS 투표를 한 뒤에 10월6일 후보를 확정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통해 10월12일 최종 후보를 확정한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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