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준표’가 있다. 특이하게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사진)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냥 좋아한다. 지지한 적도 지지할 리도 없지만 그의 건재를 바란다. 그래야 이쪽이 잘된다는 식의 진영 논리나 정치 희화화가 아니다. 그냥 정서적으로 끌리는 거다. 입만 열면 헛소리 퍼레이드인데 밉지는 않다고도 한다. 말은 그럴듯한데 행동은 전혀 다르거나, 자기 논리를 옹호하느라 백래시(반격)를 버젓이 저질러대는 이들에 견주면 그의 일관된 ‘쌈마이스러움’은 맑아 보이기까지 하단다.
최근 그는 국민의힘에 복당하면서 “계모에게 내쫓겼던 맏아들”이라고 자신을 비유했다. 실소가 나올 만한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다. 아비는 그동안 뭘 하고. 복당하자마자 그는 원내 지도부에 법제사법위원장 문제로 그만 갈등하고 국회를 정상화할 것을 주문했다. “어차피 의석수가 적어 법사위 맡은들 게이트키핑은 못한다. 법사위 여당 주고 예결위 받고 상임위원장 7개 차지해서 국정감사 때 제한적이나마 활약하자.” 실용적이고도 분명한 주장이다. 정작 본인은 상임위에서 어땠나 하면, 제1야당 소속으로 출석한 첫날 류호정 정의당 의원 옆자리에 앉아서 달고도 깊게 자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경상도 맏아들의 시대라면 용서될 것이다. 시대가 너무 빨리 건너뛴 걸까, 그가 시대를 놓친 걸까.
그는 논란을 피하지 않는다. 그 덕에 옳다 그르다 ‘구체적으로’ 토론이 가능하다. 대안은 뭐고 타협 지점은 어디인지도 찾을 수 있다. 어떤 정책이든 상대이든 자기 견해가 분명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한다. 욕먹을 때도 열렬히 먹고 욕할 때도 열렬히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정치적 자산’이다. 두 사람 다 화법은 직설적이지만 같은 시간 소통의 총량에서는 비교되지 않는다.
대선 출정식 날 윤석열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 평가해달라 하자 “24년 전 성남지청에 근무할 때 법정에서 자주 봤는데 굉장히 열심히 하고 변론도 잘했다”고 말했다. 만난 해까지 헤아리면서 평가하고 싶지 않은 티가 역력하다. 같은 날 열린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홍준표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이재명의 기본소득부터 비판하고 들어갔다. 6개월 동안 8천 명 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직접 개괄 브리핑을 하는 자리였다. 그는 기본소득이 사회주의 배급제라며 경기도에서 나눠주는 재난지원금도 자기 같으면 다르게 쓰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 자리에서 ‘굳이’ 홍준표는 ‘사형 집행’과 ‘병역 복무자 인센티브’도 옹호했다.
그는 부자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면서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 않는다. 복지를 통한 하향평준화는 안 되지만 어려운 이들은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비주류인 만큼 국민의당 등과 연대는 필수라면서도 정치판에서 중도를 믿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한다. 국민 통합은 불가능한 소리라 하고, 당내 화합은 경선 뒤에나 하는 거란다. 좌파 정책이건 우파 정책이건 필요하면 닥치는 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과 가치와 노선에서 엉망진창인데, 왜 그의 정치는 ‘진심’으로 보일까. 오래 봐서일까.
26년 전 슬롯머신 수사 여파로 수뇌부에 밉보여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검사를 그만둔 뒤 조폭에게 맞아 죽을까봐 정치판에 들어온 그의 스토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민주당 갈 뻔하다가 먼저 ‘땡긴’ 신한국당에 간 것도 그렇다.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서사를 지녔다. 그러나 자기 서사에 갇히지 않는 게 홍준표의 가장 큰 매력이다. 모순될지언정 자기 합리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타협할 줄 안다. 지금 거론되는 범야권 대선 주자들은 ‘점잖은 홍’이거나 ‘아등바등하는 홍’ ‘스펙 좋은 홍’ ‘의뭉스러운 홍’ ‘얍삽한 홍’ 등으로 분류할 만하다. 그만큼 홍준표가 보여온 스펙트럼이 넓다. 그들이 홍준표를 넘어서는 게 빠를까, 홍준표가 시대 변화를 읽고 도약하는 게 빠를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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