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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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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신공항보다 부동산 [4·7재보궐]

부산시장 선거 16개 구·군에서 박형준 후보 압승
등록 2021-04-10 01:37 수정 2021-04-10 01:47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이 2021년 4월7일 오후 부산진구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이 2021년 4월7일 오후 부산진구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민심은 냉엄했다. 2018년 사상 처음 부산에서 정권을 교체한 부산 시민은 불과 3년 만에 다시 야당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면서 성난 민심을 고스란히 분출했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속수무책으로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정권심판론 앞 백방이 무효

박형준 후보는 부산 16개 구·군에서 모두 승리했다. 강서구(56.03%)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60% 이상 득표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를 보면 전체 투표 수 154만6051표 중 96만1576표(62.67%)를 얻어 52만8135표(34.42%)를 얻은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43만3441표 차이로 앞섰다. 부산 금정구 득표율이 65.35%로 가장 높았고 이어 서구 65.07%, 박 후보의 지역구인 수영구 64.85% 순이었다. 여당 지지세가 강한 낙동강 벨트에서도 박 후보의 득표율은 사상구 61.52%, 사하구 61.77%, 북구 61.32%를 보일 만큼 높았다.

민주당은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자의 해운대구 초고층 건물인 엘시티(LCT) 주거 문제를 시작으로, 하루에 하나씩 박 당선자를 향한 의혹을 제기했다. △엘시티를 비롯한 부동산 투기 △국회 사무총장 재임 당시 직권남용 △불법 사찰 지시 △홍익대 입시 비리 △5천만원 성추문 선거 공작 △미술품 조형물(조현화랑) 비위 의혹을 ‘6대 비리 게이트’로 규정하고 해명과 사과를 촉구했다. 여기에 엘시티 특혜 분양 문제를 촉발해 ‘부자 박형준’ 이미지를 도드라지게 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듯했지만, 박 당선자의 선거 기간 지지율은 그야말로 ‘대마불사’였다. 숱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김영춘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 흐름에 정권심판론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게 지역 정가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이 이번 보선의 계기라는 점에서 민주당은 출발부터 부담이 컸다. 2020년 말 민주당이 당헌을 고쳐 부산시장 보선 후보 공천을 강행할 때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여기에 정의당이 당대표의 성폭력 사건으로 후보를 무공천한 것과 대조를 보이면서 민주당의 명분은 퇴색됐다. 물론 23년 만의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을 배출한 부산 시민의 자존심을 짓밟아버린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향한 분노도 팽배했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어떻게 만든 정권교체인데, 부산시장이라는 자가 성추행으로 자진 사퇴해서 다시 시장을 뽑아야 하는 시민의 분한 심정을 생각한다면 이번 선거 결과는 이미 뻔한 것이었다”고 고개를 떨궜다.

한편, 박 후보는 당선 직후 “엘시티 분양 과정에서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 모든 자료로 증명할 수 있다”면서도 “서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도덕적 비판도 수긍한다. 머지않은 시점에 엘시티를 처리하고 수익을 얻는다면 공익을 위해 쓰겠다”고 약속했다.

“빨리 할 수 있는 걸 지금껏 뭐 했나”

민주당은 이번 보선을 앞두고 가덕신공항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주창하고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송철호 울산시장의 견고한 동조 속에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오 전 시장이 사퇴하고 실시하는 보선을 앞두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무총리 시절 부울경의 요구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보선을 앞두고 가덕신공항 특별법 통과에 앞장섰다. 물론 부산 시민에게 가덕신공항이 부산의 미래 발전에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동력이 되리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로 각인됐지만,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은 되레 신공항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역설’을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관계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만난 많은 시민이 가덕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민주당과 정부가 가덕신공항 건설 문제를 이렇게 빨리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뜸을 들였는지 의문부호가 생겼다고 하더라”라며 “이런 점에서 가덕신공항은 이번 선거에서 한 변수는 됐을지언정 중대 이슈로는 자리잡지 못했다는 분석을 해본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은 가덕신공항 건설과 함께 2030년 부산세계엑스포 유치, 동남권 메가시티 등 초대형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힘 있는 여당 시장론’을 띄우며 막판 뒤집기에 나섰으나, 끝내 성난 민심을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신 전 세대를 불문한 부동산 문제는 이번 부산시장 보선에서 가히 폭발적인 상수였다. 선거 결과를 보면 부동산 정책 측면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내로남불’식 행태가 큰 영향을 줬지만, 그 기저에는 정부의 잇따른 규제에도 오히려 집값이나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실정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유주택자는 세금 때문에 집을 내놓지 못하고 무주택자는 집값이 너무 올라 사지 못하는 현상이 부산에서도 계속되면서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모두에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비판받고 있다.

LH가 지른 불이 들불로

여기에 ‘불공정’ 이슈도 여당이 참패한 원인이 됐다. 30대 직장인 김아무개씨는 “기권하면 했지 민주당이 아무리 미워도 국민의힘은 못 찍는다는 게 나름의 소신이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요원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깨끗하다. 남들과는 다르다’고 선명성을 부르짖던 이들의 ‘내로남불’ 행태를 보니 그간 민주당을 지지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지더라”라며 “깨끗하고 남을 위한 척은 다 하던 사람들 아닌가. 일종의 배신감이라고 할까, 그래서 민주당이 더 밉고 진절머리가 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21대 국회 초반 압도적 다수의 원내 의석을 앞세워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 주택 공시가격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사실상 증세 효과 등이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LH가 지른 불은 ‘김상조·박주민 사태’로 들불이 되면서 임계점을 넘어서버렸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전월세상한제 시행 직전에 임대료를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송진영 <국제신문> 기자

*1358호 표지이야기 - 4·7 재보궐선거 분석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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