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이 갈수록 가관이다. 검사들의 항의성 댓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그런 검사들 사표 받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치달았다. 거의 패싸움 양상이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은 왜 가만히 있나?’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다. 두 사람의 거취를 두고 대통령이 결단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용인하는 건가, 아니면 뭘 어쩔 수 없어서 손 놓고 있는 건가.
복잡할수록 ‘액면가’대로 이해해보자. 세상 시끄럽긴 하지만 딱히 누굴 하나 자를 수도, 자를 이유도 없어 보인다. 윤 총장은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보내 임기를 다 마치라 했다 하고, 추 장관은 대통령이 그렇게 비선으로 뜻을 전할 분이 아니라고 한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방송에 출연해 ‘메신저’ 운운한 표현은 부적절하다면서도 진위는 끝내 확인해주지 않았다.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법과 원칙에 따른다”며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통해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둘 모두를 신임한 모양새다. 그럼 저마다 제 소임에 충실하면 된다. 장관은 검찰에 대한 지휘권·인사권·감찰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을 잘 수사하고 정치적 중립도 지키는 거다. 그야말로 각자 할 일이다. 그런데 세상 시끄러운 게 도무지 가라앉질 않는다. 개혁은 어디 가고 총장만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와버렸다.
말이 너무 앞서거나 부풀려진 탓은 아닐까. 추 장관의 절제되지 않은 에스엔에스(SNS) 언설이 이를 부추긴 게 사실이다. 검찰이 라임 비리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총장이 이를 수용했으면 됐지, 굳이 덧붙여 “(야당과 언론은) 대검을 먼저 ‘저격’해야 한다”고 열을 낼 필요가 있었나. 장관 비판 글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검사를 특정해 “이렇게 커밍아웃해주면 개혁만이 답”이라고 조롱할 이유는 무엇인가. 표적 삼아 분풀이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표현도 대상도 대단히 부적절했다. 지휘권자로서 권위와 자제력을 스스로 던져버린 셈이다.
윤 총장도 이런 민감한 시기에 전국 순회는 굳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 통상의 업무로 일선 검사들과 간부들을 만난다면서 ‘강연회’는 또 뭔가. ‘골질한다’는 뒷골목 용어밖에 안 떠오른다. 그나마 그가 페이스북을 안 하는 건 천만다행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우리 정치에도 부담이지만 당사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피해는 추 장관 쪽이 더 커 보인다. 윤 총장은 엉겁결에 (흥하든 망하든) ‘대망론’에 올라탔는데 추 장관은 그와의 ‘ㄱ싸움’으로 사실상 ‘커리어 하이’(스포츠에서 개인이 가장 잘했던 시즌)를 찍어버린 꼴이다. 검찰 개혁을 향한 열망이든 검찰권 남용에 대한 경계이든 사람들은 추 장관에게 바라는 바가 있었고 그래서 힘을 주었다. 그는 그 힘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다. 중심을 제대로 크게 치라고 쥐여준 북채로 변죽만 울려댔다. 그런 고수에게 다시 북채를 맡길 사람이 있을까.
검찰 개혁은 차분히 추진하면 될 일이었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처절하게 치른 뒤 아닌가. 내 편은 아니지만 저쪽 편도 아닌 검찰총장이 있고, 압도적인 의석수의 국회 지형에 법안도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게다가 처음으로 레임덕(지도력 공백) 없는 대통령이란 말을 듣는 통치자 아래 있다. 총장을 비롯한 검찰주의자를 타이르고 다독이며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추 장관의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언행이 순리대로 해도 될 일을 정쟁과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시비 걸고 싶은 이들의 불안을 돋워 목소리를 키웠다. 호랑이는 잡아먹지도 않을 쥐를 향해서는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다. 추 장관은 대체 왜 그럴까. 호랑이가 아니거나 사냥감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본인의 페이스북에 ‘좋아요’ ‘화나요’ ‘슬퍼요’를 누르는 이들이 여론을 대표한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더 늦기 전에 ‘에스엔에스 디톡스’부터 권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헌법재판소 ‘8인 체제’로…윤석열 탄핵심판 속도 붙는다
임영웅 소속사 “고심 끝에 예정대로 콘서트 진행…취소 때 전액 환불”
[단독]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땅 밑까지 콘크리트…의아했다”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신진욱의 시선]
헌정사 첫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윤석열 체포 시간만 남았다
“야구방망이로 대법관 위협”…‘부정선거’ 신봉한 간 큰 ‘계엄 계획’
‘테라·루나’ 권도형, 결국 미국으로 추방…FBI에 신병 인도
“숨진 승무원이 동창”…추모 뒤 친구들은 끌어안고 오열했다
국힘 ‘내란 국조’ 반대표 우르르…국조 참여 의원도 기권·반대
푸른 뱀의 해 2025년…그런데 뱀이 무섭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