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도 미국 대선 결과는 안 나왔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에 근접했다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 효력 등을 쟁점화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혼란이 어디까지 갈지 가늠이 안 된다.
민주주의 선진국이 왜 이렇게 됐냐는 한탄도 있지만, 미국 선거는 완벽했던 적이 없다. 1876년 대선에선 4개 주 투표 결과에 논란이 생겨 당선자를 정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상·하원 각각 5명과 연방대법원 판사 5명으로 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공화당 러더퍼드 헤이스 후보를 선출했다. 하지만 이 결과를 납득시키기 위해 공화당 정부는 민주당에 남북전쟁 뒤 남부 지역에 남아 있는 연방군 철수와 산업 지원 등을 약속해야 했다.
각 주가 고유 특성을 유지한 채 국가를 이룬 걸 정체성으로 여기는 나라이다보니 이런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체제를 유지하려면 제도 ‘구멍’을 메우기 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패자의 승복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연히 이를 거부할 뜻을 내비쳤다.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보기엔 관례나 합의는 기득권의 핑계에 불과하다. 대선 여론조사가 계속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론조사조차 기득권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제도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인정하는 행태와 이를 정당화해 지지를 얻는 정치의 연합이 문제다.
여기선 우리도 자유롭지 않다. 가령 사전투표 음모론과 여론조사 불신은 한국에도 있는 현상이다. 지금은 극우세력의 비상식으로 여기지만 이른바 민주세력도 선거에 졌을 땐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결국 음모론은 잘못된 믿음이라기보다 자신을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로 만들어 손해를 막고 이득을 추구하려는 수단이다.
홍남기(사진) 경제부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은 미 대선 직전 한국 정치의 화젯거리였다. 경제 수장이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사표를 던진 게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에서 “참을 수 없었다”고까지 한 배경을 볼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 패싱’의 다른 사례인 긴급재난지원금, 재정준칙, 추가경정예산 규모 등을 둘러싼 논란은 철학의 차이였다. 홍남기 부총리에겐 재정 확장 기조가 앞으로도 불가피하다는 걸 관료사회에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표 남발은 부적절하다.
문제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현행 10억원으로 유지하는 것이 이런 철학 차이로 볼 수 없다는 거다. 돈을 쓰려면 더 걷어야 한다. 특히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는 지금까지 부실했다. 거래세는 내리거나 없애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게 세계적 추세라는 지적도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추는 것은 이미 2018년에 확정된 사안이다. 계획대로 가는 게 이 정부 철학에도 맞다. 이걸 뒤집을 이유는 주요 유권자인 ‘동학개미’가 반발한다는 것뿐이다.
‘동학개미’는 주가가 오를 땐 투자는 자기 책임이라 하고, 주가가 내려갈 땐 기득권 음모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한다. 재보궐선거의 규모와 시기가 달랐다면 대주주 기준은 무리 없이 3억원으로 변경됐을 거다. 이런 우리 모습은 트럼프의 미국과 얼마나 다른가? 한 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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