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대표가 사상 초유의 단식투쟁에 나섰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편파적 행위를 했다는 게 이유다. 중간에 갑자기 소속 의원들의 국정감사 복귀를 요청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으나 어쨌든 ‘투쟁 모드’를 일순 주도한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문제 삼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언은 “맨입으로”다. 구체적으로는 새누리당이 김재수 장관의 해임 건의안 철회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이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청문회 개최에 합의’해줘야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은 황당하다고 말한다. 정세균 의장이 언급한 내용은 이미 추석을 전후해 여야 간 논의한 내용인데 이를 다시 언급하는 것만으로 편파적이라고 제기하는 건 옳지 않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국회의장은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것이라는 설명 역시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야당이 무슨 설명을 하든 ‘정세균 사퇴’를 관철하겠다며 비대위까지 꾸려 들고일어난 상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 것은 새누리당의 ‘레토릭’이 정치적 냉소주의의 문법을 따른다는 거다. 대표적으로는 이정현 대표의 ‘대권병’ 발언이다. 정세균 의장이 정기국회 개회사부터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에 이르기까지 편파적이라는 논란을 자초하는 건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고 싶어서라는 거다. 정세균 의장의 ‘맨입’ 발언을 ‘더러운 거래’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표준형은 ‘정치인이 주장하는 명분과 대의는 핑계에 불과하며, 정치인은 오로지 사익 추구를 위해서만 행동한다’는 걸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정현 대표를 위시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정세균 의장을 비난하는 논리가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회의장은 국회 내 균형 못지않게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균형 역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사실상 국회를 무시하고 무력화해왔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부적격 취지의 보고서를 채택해도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건 일종의 관례처럼 굳어졌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장의 ‘오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집권여당이 이런 맥락을 외면하고 정치적 냉소주의에 편승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건 확실한 문제다. 더 큰 비극은 이런 식의 규정이 박근혜 정권 전체에서 반복해 나타난다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배신의 정치’ 논란이다.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한 것에 대통령이 보인 즉각적 반응은 그가 자기 정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다는 거였다.
이는 ‘내용’이 아니라 ‘의도’를 공격하는 전형적 수법이다. 이 정권은 거의 모든 민감한 문제에 동일한 태도를 보여왔다.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문제제기를 ‘부패 기득권 세력’의 문제로 만든 것도 같은 원리다. 이런 냉소주의적 인식에 기초한 정치가 우리 사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이게 다 무슨 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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