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16일, 박근혜 후보의 TV 토론 전략은 멋졌다. 명명 자체를 바꿨다. 문제를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에서 야당의 여성 감금으로 바꿔냈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일방적이란 표현만으론 다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완벽하게 불리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그야말로 비상하게, ‘프레임’(frame) 전환을 이뤄냈다. 단박에.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후보는 스스로 인권변호사라고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 여직원 사태에서 발생한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 한마디도 말씀도 없으시고, 사과도 없었습니다. 2박3일 동안 여직원을 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부모님도 못 만나게 하며, 물도 밥도 끊어버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사법 당국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했다. 대선 후보 TV토론이 끝난 직후 밤 11시 경찰은 ‘긴급 중간 수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수서경찰서는 “김씨가 제출한 컴퓨터 등을 분석한 결과, 악성 댓글을 달았다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등 특별한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 왜 단정을 하느냐?”고 박 후보에게 묻기도 했는데, 단정할 수 있어 단정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호응이었다.
언론도 실마리를 찾았다는 듯 일제히 태세를 전환했다. 룰이 이미 그렇게 짜여 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감탄스러운 전환이었다. 1987년 이후 대통령 선거 역사를 훑더라도 가장 드라마틱한 전환이었다. 암튼,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은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가장 치열했던 선거, 어떤 이들은 선거를 앞두고 분명 골든크로스(golden cross)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 TV토론과 경찰의 수사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진실은 선거가 끝나고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드러났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지난 대선 판세 전체를 흔들었던, 어쩌면 ‘정권의 정통성’을 밑동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지 모를 ‘국정원 요원 감금’ 파문은 결국 ‘셀프 감금’이었다. 사건으로부터 4년의 시간을 끌다가 어렵사리 내린 소박한 결론이다. 물론, 조금 명백한 결론은 이미 내려졌다. 그 국정원 요원은 문을 걸어 잠그고 댓글을 삭제하고, 자료를 지웠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시간을 끌며 꾸역꾸역 버텼던 것이다.
조직적이었건 자발적이었건 국정원 요원이 첨예한 대선 국면에서 야당 후보를 비방할 목적으로,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여론 조작전을 벌였다. 국정원은 애초 그 작업이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다가, 증거가 드러나면 딱 그만큼씩만 말을 바꿨다. 이것이 제대로 된 나라냐고 묻는다면, 적당히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건이다. 하지만 세상은 별로 동요가 없어 보인다. 당시, 궤변인 듯 궤변 아닌 궤변 같은 비상한 얘기를 했던 대통령 역시 이번에는 그 궤변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언론 역시 전반적으로 시큰둥하다.
이번주, 청와대가 공영방송의 보도와 인사에 개입했음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해놓고 기만을 저질러왔다. 공교로울 뿐일까. 둘 다 오직 한 명을 위한 일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텐가. 단언컨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이 말한 ‘더 나은 쥐덫’(a better mousetrap)에 걸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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