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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부활? 정치 이념 분화?

민심
등록 2016-04-19 16:01 수정 2020-05-03 04:28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그 말뜻을 잘 새겨봐야 한다. ‘천심’의 특징은 우리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거다. 하늘, 그러니까 신은 언제나 이유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가늠하기 위해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야 한다. 국회의원선거(총선) 결과에 대해 수십 가지 분석을 내놓을 수 있지만 모두 충분하지 않고 개운찮은 느낌이 드는 건 그래서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 결과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정두언이 경고할 때 알아먹었어야 했다. ‘유승민 자르면 난리 난다’는 수도권 비박들의 경고대로 여론은 뒤집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다음날 하루 종일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의 거의 모든 주요 참모들이 거취를 언급하며 석고대죄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게 아닐까 추측한다.

대통령이 정치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 든 건 정치의 ‘본질’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믿음, 즉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너무나 신뢰한 결과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수도권의 스윙보터들은 일제히 마음을 돌렸다. 대중의 인내심을 시험한 결과는 이토록 참혹했다. 여기까진 쉬운 설명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영호남이라는 지역 대립과 수도권 등 도시 지역에서 중간층의 표심 향방을 기본으로 놓고 구도를 분석해왔다. 영남의 새누리당, 호남의 국민의당, 수도권의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기존 도식으로는 이해 불가다. 어떤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이 ‘호남당’이라는 굴레를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전국정당으로의 초석을 쌓는 데 성공했고 과거 ‘야도’로 불린 부산을 수복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과거 지역과 이념이 혼재된 상태의 다당제 구도가 성립된 시기가 있었다. 평화민주당, 보수적인 부산·경남의 통일민주당, 박정희 정권의 후신인 충청의 신민주공화당, 또 다른 보수 기득권이자 신군부의 심장인 대구·경북의 민주정의당이 난립하던 때다. 이 시기를 끝내버린 ‘3당 합당’은 이념보다 지역을 우선하는 풍토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역적으로 ‘왕따’가 된 호남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 의식과 본래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김대중의 존재로 인해 ‘이념’과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생은 정당에 지역과 이념이 뒤섞인 시대가 생산적일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3당 합당’에 비할 것은 아니겠으나, 지금 총선 결과를 놓고 수도권과 부산·경남의 수복을 말하는 목소리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선거 결과는 호남당-수도권당-영남당으로 가느냐, 중도보수당-중도진보당-보수당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원론적 차원에서 정치의 바람직한 발전상은 지역당 체제가 이념으로 분립하는 것이다. 물론 그게 어느 순간에나 지금보다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나, 원래 정치의 발전이란 그런 것이다.

미국 정당사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노예 해방’을 말하는 북부 자본가를 대표하는 공화당과 연방주의에 반감을 가진 남부 지주들의 민주당은 이제 보수와 진보로 명확히 갈라서 정치의 극단화를 초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의 출현은 이 결과다.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아니다. 민심은 천심이고, 사실 우린 하늘의 뜻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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