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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쏘아올린 작은 공

이주의 키워드/야권통합
등록 2016-03-08 15:33 수정 2020-05-03 04:28

김종인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핵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야권통합론’이라는 정치의 진부한 레토릭이 이렇게까지 파괴력을 발휘하는 건 순전히 야권의 정치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 입장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생각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가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공천’과 ‘당선 가능성’이다. 박주선 의원은 야권통합론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친노 패권주의가 청산된 바 없는데 다시 통합을 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과연 ‘야권’이 통합되면 박주선 의원이 공천을 받겠는가? 그의 지역구에서 경선 과열 때문에 일어난 투신자살 사태 등을 돌아보면, 이 질문에 긍정적 답을 하기 어렵다.

야권통합론에 가장 격렬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건 안철수 공동대표다. 누구나 알다시피 안철수 공동대표의 최종 목적지는 ‘대권’이다. 모처럼 대권을 노리고 짐을 싸서 나왔는데 대들보를 흔드니 화가 나는 것이다.

안철수 공동대표 입장에서 더 기가 막힌 건 김한길 선대위원장과 천정배 공동대표의 태도다. 김한길 선대위원장의 경우는 자신의 지역구가 양자 구도로 정리돼야 살길을 찾을 수 있다. 천정배 공동대표의 경우 젖과 꿀이 흐르는 광주를 떠나 수도권에 출마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라는 게 문제다. 이른바 ‘야권통합’ 과정에서 이런 어려움들을 정리하고 자리를 보전받을 수 있다면 통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호남을 지역구로 하는 현역 의원들이 ‘물갈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은 다들 이런 생각에 이심전심할 거라는 추측을 강화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야권통합론’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찌됐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신의 한 수’를 놓았다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치 9단이 가진 파괴력인가, 이론과 감각과 실무를 모두 아우르는 노장의 관록인가? 그를 과대평가하고 싶진 않으나 적어도 국민의당과 안철수 공동대표의 ‘급소’를 찔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급소’는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당에 몸을 실은 정치인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며, 정치적 셈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언제고 생각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즉, 의문인 것은 어째서 국민의당에 이런 뻔해 보이는 ‘급소’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건 그 당의 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당이 무엇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지 정확히 듣지 못했다. 더민주 지도부로부터 공천받지 못하게 생긴 일군의 무리와 대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싶은 대권 주자 안철수의 욕망이 만나 생긴 조직이라는 것 정도의 선입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당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정치에 임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동안의 과정을 통해 이런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그 당의 지향과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안철수 대표가 호남 지역민들에게 “정권 교체를 이루고 싶다는 바람을 제가 반드시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과 그 당에 합류한 정치인들이 “문재인을 피해 왔더니 안철수가 있더라”는 식으로 한탄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생존이 먼저고 지향이 뒷전인 정치는 오래갈 수 없다. 젊은 네티즌들은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이미 오래전 ‘간철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여기에 담긴 의미는 단지 우유부단하다거나 비겁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느 지점에 서야 유리한지를 잘 알고 그걸 항상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와 같은 정책적 설명도, ‘새정치’라는 가치중심적 레토릭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인이 우릴 속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정말 그렇다는 걸 보여주니 살아나갈 길이 없다. 김종인이 본 것은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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