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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는 싸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미로
등록 2015-11-03 17:31 수정 2020-05-03 04:28

군부독재 이후 최대 수의 사복 경찰이 학내에 진입했다고들 한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보여준 ‘허슬 플레이’에 감명받았다는 간증도 쏟아진다. ‘장~하다’ ‘사귀고 싶다’. ‘이대는 싫지만…’이라는 유의 비뚤어진 감상도 못난 남자들의 입을 통해 나왔다. 이 못난 남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따로 다뤄볼 만한 일이지만, 오늘은 못난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게 먼저다.

못난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누구는 ‘제2의 촛불’이 될 거라는 성급한 주장도 내놓고 있는데,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따지면 수서발 KTX 법인 신설 문제를 넘어서는 파괴력을 갖고 있는 걸로도 비친다. 2천 명에 달하는 교수들이 반대 성명을 냈고 2만 명쯤 되는 일선 교사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사학계 거의 전체가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진단도 나온다. 국정화된 역사 교과서로 학습해야 할 주체인 청소년들도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명박 정권으로 따지자면 2010년의 무상급식 바람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3년차였다. 직선제 도입을 통한 진보적 교육감들의 탄생과 맞물려 무상급식 이슈는 급물살을 탔고 그해 지방선거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미쳤다. ‘뉴 민주당 플랜’이라는 중도화를 고민하던 제1야당은 발 빠르게 이 흐름에 몸을 실었고 2012년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자산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당시와 오늘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간의 차이점도 있다. 무상급식은 진보적 시민단체 등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슈였다.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기에 큰 역할을 할 사람들이 이미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으로 결속돼 있던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오히려 ‘뉴라이트’와 여권이 불을 붙인 이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사실 별다른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준비 없는 싸움의 결말은 또 다른 퇴행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친일과 독재에 대한 반감으로만 귀결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고, 이에 동조하는 자들 역시 친일분자였던 자신의 집안 내력을 숨기기 위해 이 싸움에 몸을 던지고 있다는 식이다.

물론 그런 추론이 근거가 없지 않다. 특히 대통령의 평소 발언을 되짚어보면 확신은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사회구조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늘 한 발짝 더 나아간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냐, 검인정제냐, 자유발행제냐를 넘어서 ‘역사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냐’를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다양한 역사를 돌아본다면, 권력이 역사를 왜곡해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역사를 다시 쌓아올린 사례를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소련이나 북한의 지도층이 자신에게 반기를 든 ‘역적’들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에서 삭제한 것이 대표 격이다. 그들은 그것을 ‘혁명적 체제’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했겠지만, 체제 비판과 정치적 도전을 거세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미 생생하게 목격했다.

반문해봐야 할 것은 그간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관이 마찬가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가의 문제다. 뉴라이트는 이 지점에서 탈출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과거사 ‘세탁’ 역시 그들만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발현이 아니던가. 답하기 힘든 이 질문은 우리가 미국의 압력에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중국의 돈에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에서 더 절실히 다가온다. 과연 우리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글·그래픽 김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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