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진즉에 3만불 시대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국가의 성장을 가로막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었다니 금시초문이다. 총파업이라고 해봤자 그저 광화문 일대에 교통이 많이 막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효력도 없는 시대에 난데없이 노조를 걸고넘어지는 이 발언의 진원지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작심한 듯 쏟아내는 후속 발언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 다른 것도 아닌 콜트·콜텍 사태를 거론해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던 우량 기업을 악마 같은 노조가 망가뜨린 것처럼 말했다. 3천 일을 훌쩍 넘겨서 투쟁 중인 노조원들도, 그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집에서 잠자던 톰 모렐로(지금은 해체한 록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의 기타리스트. 독보적인 테크닉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불법 해고 투쟁에 연대하고 있으며, 투쟁에 헌정하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본 바로는 아무 일 없이 흑자를 내면서 잘 돌아가던(이건 맞다) 콜트·콜텍이, 멀쩡히 일하던 공장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짐을 싸서 인건비가 싼 해외로 야반도주한 사태가 맞다. 노조에는 멀쩡한 회사를 망칠 기회 자체가 있지도 않았고, 그들은 해고된 뒤 복직을 위해서 싸움을 시작했을 따름이다.
당연히 이런 발언에 대해 프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비판이 쏟아졌다. 김무성 대표의 말에 비하면 대부분 지극히 옳으신 말씀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연일 터트리는 망언의 파급효과에 비해서 그것에 대응하는 맞는 말들이 갖는 힘은 미미해 보인다. 최소 30%의 콘크리트를 깔고 있는 새누리당, 40%의 지지율을 보이는 대통령, 그리고 비록 그놈의 오차범위 내의 싸움이라고 해도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김.무.성.
사실 그를 바라볼 때마다 나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대체 김무성이란 무엇인가? 그가 막후의 실세로 지내던 시절만 해도 그냥 직업이 국회의원인 경상도 출신의 K-저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 전면에 나섰다. 그런데 그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을 딱히 가지고 있지도 않고, 세련되거나 지적인 이미지를 어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처럼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연일 쏟아내는 발언이나 행보들을 보고 있자면 그는 곤란함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존재다.
청년노동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은 “악덕 업주에게 당해봐야 구별법도 생기고 하니 그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수준이다. “복지가 과잉이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여성의원 공천은 “아이를 많이 낳는 순”으로 줘야 하는데, 여성의원이 적은 것은 “실력이 안 되는 여성의원들 탓”이므로 할당제 같은 소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며, 북한의 도발에는 “전쟁을 불사한 강경 대응”을 외치다가 협상에서 ‘유감’을 받아냈으니 사과랑 똑같은 것이라며 철판을 까는, 어느 곳에 내놓아도 빠질 만한 그런 인식과 발언들이 넘실거리고 있다.
사실 진정으로 서늘한 것은 그의 발언들이라기보다는 그것의 배경이다. 그는 어디를 향해 말을 하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서 이미 자신만의 확고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가 노조에 대해 이런 막말을 내뱉는 이유는 노조가 그의 정치생명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며, 각종 인권 이슈에 대해서 내뱉는 몰상식한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역으로 말해 이런 막말이나 인식에 대해서 어떤 문제제기를 하든 그는 그의 정치적 자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당내 계파 갈등 같은 정치적 산수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지지 기반이 꽤나 확고하게 존재한다. 이것이 그가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유, 그의 완고한 표정이 어떤 벽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무서운 건 그가 아니다.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상관없어 국(國)’의 국민들이다.
최태섭 문화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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