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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미래, 우리들의 시간

등록 2014-03-11 15:1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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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과 공간,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르빈 로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은 하루 평균 350km씩 서쪽으로 공간이동을 했다고 한다. 단숨에 프랑스 영토를 손에 거머쥔 배경이다. 역사 문헌을 근거로 몽골 기마부대의 이동 속도가 이보다 훨씬 빨랐다는 주장도 있다. 시간과 공간, 이 둘을 맺어주는 ‘속도’라는 연결고리가 전사(戰史)의 단골 소재만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해묵은 전사를 자주 입에 올리곤 한다. 시간과 공간은 이윤을 추구하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자본의 무한 팽창 욕구를 실현하는 무대인 까닭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반경 1500km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지역은 어림잡아 10억 인구가 밀집해 있는 공간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현상이 두드러진 지역이기도 하다. 바로 엄청난 ‘핵발전 드라이브’가 그 비밀이다. 3년 전 참상이 벌어졌던 일본 후쿠시마와 서울의 거리는 1200km. 인류 대참사로 기록된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2천km나 떨어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선 갑상선암 등 각종 암의 발생 빈도가 급증했다. 서울~부산 사이의 ‘공간 격차’인 400km는 서울과 중국 산둥성 하이양 핵발전소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같다. 만일 이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벌어지면 한순간에 한반도 전역이 방사능 오염 지대로 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1세기는 시간과 공간의 ‘융합’, 곧 동시대성과 편재성(遍在性)을 특징으로 한다. ‘동시에, 그리고 어디서나’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존재 양식이다. 은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온통 핵으로 뒤덮인 동아시아 지역을 ‘위험공동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려 한다. ‘원(One) 아시아, 핵 아시아’로부터 집단 탈출을 꿈꾸며.

2. 시간과 공간, 둘
스무 살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고작 수십달러를 손에 쥔 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나라는 어느새 사상 최대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큰손이 됐다. 진보 정권이 집권한 10년을 지나, 두 번째 보수 정권 시기를 살고 있다. ‘인터네트’란 신문물에 환호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모바일 세상에서 온종일 ‘논다’. 세월은 흘렀고 무대는 달라졌다. 시공간이 한데 빚어내는 작용과 반작용은 우리를 매 순간 압도하고 있다.
“변하지 않아 대견하다”는 독자들 말씀에 감사드린다. 20년 전 선배들부터 지금 이 사무실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동료들까지, 매주 어김없이 찾아오는 마감의 고통과 맞서온 끈기에 대한 작은 위로로 받아들이고 싶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따끔한 지적에 아프다. 어느새 무뎌진 실험정신을 일깨우라는 죽비다.
가끔씩 시사주간지의 ‘시제’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고 말하는 게 솔직할 터. 세상일에 너무 앞서갈 수도, 그렇다고 마냥 같은 보폭만 맞출 수도 없는, 줄타기 곡예 같다. 그래서일까. 아마도 전(前)미래가 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자주 든다. 애초 언어학자들이 고안해낸 전미래란 개념은 현재와 미래 사이에 놓인, 제3의 시제를 말한다. 언어학적 개념에 피와 살을 보탠 건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이다. 미래를 만드는 현재의 주체적 실천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다. 미래는 항상 다가오지만, 저절로 찾아오는 법은 없다. 스무 살 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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