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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으레 ‘트렌드~’ 따위의 제목을 단 보고서나 책들이 쏟아진다. 저무는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며 새해 사회 각 분야의 트렌드를 미리 전망하는 내용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올 한 해 여러 사람 입에 자주 오르내린 단어 가운데 ‘소진사회’(Surviving Burn-out Society)란 것도 있다. 한때 한 철학자의 저서에서 유래한 ‘피로사회’란 말이 유행어로 쓰이기도 했는데, 소진사회란 그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상태를 이르는 말일 게다. 실제 의학계에선 우리에게도 익히 낯익은 ‘만성피로증’이란 단어를 언젠가부터 ‘과사용증후군’이란 새로운 단어가 밀쳐내버렸다. 한마디로, 소진사회란 단순히 피로의 누적을 넘어, 심신 자체가 완전히 ‘방전’된, 무기력한 삶을 지칭하는 셈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번아웃쇼핑’이란 파생어까지 등장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알뜰하게 구매하는 것도, 그렇다고 과시욕에 사로잡혀 제 능력을 벗어난 소비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 오로지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떨쳐내기 위한 의도로 마구 질러대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모든 게 이렇다 할 출구 없이 꽉 막혀버린 틀 안에 갇힌 현대인의 탈진된 일상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소진사회에서 벗어나는 해법을 찾는 일을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당연히 사회구조 전반의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선 문제만큼이나 그 해법 역시 과거의 낯익은 틀과는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새로이 경험하는 ‘다른’ 문제는 전혀 다른 접근과 상상력, 실험정신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있노라면 한반도의 시곗바늘은 왜 거꾸로만 되돌아가고 있는지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한 주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선 어쩌면 ‘같기도’ 한 풍경이 나란히 연출됐다. 북한 정권의 2인자로 알려졌던 인사의 급작스러운 실각과 처형 소식은, 그 사회 내부의 정치공학적 구도를 잠시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자료화면 속 초췌한 모습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1960년대 서구의 전위적 운동가들이 입에 올렸던 ‘스펙터클 사회’의 원형이 시대를 건너뛰어 고스란히 재현된 느낌이다.
남북 체제의 차이를 무시한 채 정권의 행태만을 단순 비교하는 일은 지극히 위험할뿐더러 무모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광기는, 씁쓸하게도 마치 우리가 오래전 ‘왕조’ 시대로 되돌아간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반역과 불복이란 이름으로 정권이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속에 말할 자유는 물론이려니와 부정선거라는 원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어찌 보면 현재 남북의 지도자들은 ‘상속자들’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내가 누구의 딸인지 잊어달라”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선, 이제 기회 있을 때마다 ‘아버지’라는 원초적 단어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상속이란 당연히 선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넘겨받는 일이다. 지난날 남과 북의 ‘적대적 공존’을 가능케 했던 폭압과 공안통치의 망령이 우리 사회를 소진사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회적 질식 상태로 만들 수 있음을, 그렇기에 그것이 세상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얼마나 낡은 유물인지를 이 땅의 상속자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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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으레 ‘트렌드~’ 따위의 제목을 단 보고서나 책들이 쏟아진다. 저무는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며 새해 사회 각 분야의 트렌드를 미리 전망하는 내용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올 한 해 여러 사람 입에 자주 오르내린 단어 가운데 ‘소진사회’(Surviving Burn-out Society)란 것도 있다. 한때 한 철학자의 저서에서 유래한 ‘피로사회’란 말이 유행어로 쓰이기도 했는데, 소진사회란 그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상태를 이르는 말일 게다. 실제 의학계에선 우리에게도 익히 낯익은 ‘만성피로증’이란 단어를 언젠가부터 ‘과사용증후군’이란 새로운 단어가 밀쳐내버렸다. 한마디로, 소진사회란 단순히 피로의 누적을 넘어, 심신 자체가 완전히 ‘방전’된, 무기력한 삶을 지칭하는 셈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번아웃쇼핑’이란 파생어까지 등장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알뜰하게 구매하는 것도, 그렇다고 과시욕에 사로잡혀 제 능력을 벗어난 소비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 오로지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떨쳐내기 위한 의도로 마구 질러대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모든 게 이렇다 할 출구 없이 꽉 막혀버린 틀 안에 갇힌 현대인의 탈진된 일상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소진사회에서 벗어나는 해법을 찾는 일을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당연히 사회구조 전반의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선 문제만큼이나 그 해법 역시 과거의 낯익은 틀과는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새로이 경험하는 ‘다른’ 문제는 전혀 다른 접근과 상상력, 실험정신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있노라면 한반도의 시곗바늘은 왜 거꾸로만 되돌아가고 있는지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한 주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선 어쩌면 ‘같기도’ 한 풍경이 나란히 연출됐다. 북한 정권의 2인자로 알려졌던 인사의 급작스러운 실각과 처형 소식은, 그 사회 내부의 정치공학적 구도를 잠시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자료화면 속 초췌한 모습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1960년대 서구의 전위적 운동가들이 입에 올렸던 ‘스펙터클 사회’의 원형이 시대를 건너뛰어 고스란히 재현된 느낌이다.
남북 체제의 차이를 무시한 채 정권의 행태만을 단순 비교하는 일은 지극히 위험할뿐더러 무모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광기는, 씁쓸하게도 마치 우리가 오래전 ‘왕조’ 시대로 되돌아간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반역과 불복이란 이름으로 정권이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속에 말할 자유는 물론이려니와 부정선거라는 원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어찌 보면 현재 남북의 지도자들은 ‘상속자들’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내가 누구의 딸인지 잊어달라”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선, 이제 기회 있을 때마다 ‘아버지’라는 원초적 단어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상속이란 당연히 선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넘겨받는 일이다. 지난날 남과 북의 ‘적대적 공존’을 가능케 했던 폭압과 공안통치의 망령이 우리 사회를 소진사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회적 질식 상태로 만들 수 있음을, 그렇기에 그것이 세상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얼마나 낡은 유물인지를 이 땅의 상속자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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