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중심인 건 정작 주변이 존재할 때뿐이다. 주변이 사라지면 중심도 그 의미를 홀연 잃고 만다. 제국은, 온전히 포섭되지 않은 변방의 영토들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오히려 최전성기를 누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제국의 위용이란 그런 것이었다. 무자비한 정복과 정벌을 통해 그 어떤 ‘외부’조차 남겨두지 않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제 힘과 논리 아래 모든 존재를 무릎 꿇렸을 때, 바로 찬란했던 제국 자체가 붕괴되는 ‘끝의 시작’이 함께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자본주의가 가장 강성했던 때 역시 ‘체제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자본주의가 아닌 것'과 공존했던 시기와 포개진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인 ‘확장 욕구’가 아직은 온전히 허기를 채우지 못했던 탓이다. 일종의 여백이라고나 할까. 자신과는 철학과 이념, 논리를 공유하지 않는 불편한 세력과 한 무대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은, 되레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강제했다. 자본주의는 진정 강했고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경쟁 상대가 마침내 무너지고 난 뒤,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자본주의의 복음이 스며들어간 뒤, 결국 ‘역사의 종말’이 찾아온 뒤, 정작 자본주의는 중병을 앓고 있다. 과거에 경험했던 식의 순환상의 위기가 아니다. 자신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체제상의 위기, 근본 위기다.
취임 첫해부터 박근혜 정부는 마녀사냥 놀이에 푹 빠진 느낌이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 논란 속에 대통령이 총총히 유럽 순방길에 나선 사이, 정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안’을 국무회의 긴급 안건으로 올려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숨 돌릴 틈 없는 방문 일정을 소화한다던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에서 전자결재로 즉각 화답했다. 국내 정치엔 개입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통치’ 철학 아래, 역전의 공안통들이 총출동해서 벌이는 최근의 공안몰이는 ‘외부’와 ‘타자’에 대한 갈등과 공세를 넘어 정복과 정벌, 아예 박멸에 가까울 정도다. 저들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가 ‘한 점 티끌도 없는, 순결하고 온전한’ 건전사회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법과 원칙, 우리 사회가 모진 희생의 대가로 힘들여 쌓아올린 민주주의 근간이 허무하게 붕괴되는 건 물론이다.
주변 없는 중심은 사라진다. 순결하고 완성된 제국이란 속살부터 곪아터져 무너지기 마련이다. 경쟁 상대를 잃어버린 자본주의가 갈 길 잃고 휘청대고 있듯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 광풍의 물결은, 위엄 있는 ‘공주’와 기세등등한 ‘공주의 남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결국엔 자신의 성마저 허무하게 무너뜨리는 장본인임을 미리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깨우침 없는 모든 ‘중심’에게 끝의 시작은 소리 없이,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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