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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록 2013-08-09 10:55 수정 2020-05-03 04:27

얼마 전 국내 번역 출간된 는 ‘투자’라는 이름의 특정한 인간 행위가 현대인의 삶 속에 얼마만큼 깊숙하게 침투해 들어왔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는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주의 지배세력이 창조해낸 ‘투자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책에 ‘투자하는 인간, 신자유주의와 월스트리트의 인류학’이란 부제가 붙은 배경이기도 하다. ‘나는 투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야말로 이 시대의 확고한 십계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투자라는 단어에서 그 행위 주체로 곧장 기업만을 떠올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투자는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자주 내뱉는 단어 중 하나다. 마치 리스크, 스펙, 기회비용이란 단어만큼이나 우리 삶 아주 가까운 곳에 찾아들었다. 특히 경제 상황이 어려워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그다지 편치 않은 때일수록, 투자는 재테크란 이름의 달콤한 유혹으로 찾아들곤 한다. 단지 직접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개미투자자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적립식 펀드는 물론이려니와 다양한 형태의 퇴직연금이나 심지어 국민연금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우리의 삶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금융시장의 ‘포로’로 변해버렸다.
이런 흐름의 밑바탕에서 ‘거대한 전환’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하게 다져졌던 사회·경제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계층과 계급, 성과 인종, 지역 등 지난날 우리의 존재 기반과 의식구조를 갈라놓았던 구분선이 차츰 희미해지는 대신, 투자하느냐 아니냐의 새로운 ‘편가르기’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면? 말 그대로 ‘투자자 사회’의 출현이다.
실제로 나라 안팎에서 거대한 전환의 조짐은 속속 엿보인다. 특히 기존 복지제도의 개편 움직임과 맞물려 그 의미나 파급효과는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공적연금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세에 개인계좌(Personal Accounts)를 도입하려던 예가 대표적이다. 사회보장세를 일괄적으로 걷는 대신, 그 일부를 개인의 희망에 따라 개인계좌를 통한 투자로 대체하도록 하자는 게 뼈대다.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국가의 ‘책임’이 개인의 ‘선택’으로 바뀌는 그 과정은, 곧 우리를 사회보장의 ‘수혜자’(수급권자)에서 금융시장의 ‘플레이어’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일 뿐이었다. 미국 경제지 이 “주식투자자가 늘어난다는 건 곧 공화당 지지자가 늘어난다는 뜻”이라고 갈파했던 배경도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자 사회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전환에 걸맞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씨앗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일종의 ‘투자자 운동’ 말이다. 중요한 건 단지 투자자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차원을 넘어설 수 있느냐가 그 운동의 성패를 가를 것이란 점이다. 지난날 여러 나라들에서 노동운동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건, 노동자 계급의 배타적 이해에만 매몰되지 않았던 덕분이다. 단기적인 투자 성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더 넓은 틀에서 투자 대상(기업)과 사회 전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에너지로 승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당장 우리 주변의 퇴직연금부터 찬찬히 뜯어보자. 흔히 노동자가 가진 건 맨몸뚱이 하나뿐이라고들 한다. 분명 이는 낡은 패러다임이자 지나친 자기비하일 뿐이다. 퇴직연금이란, 엄연히 일하는 사람들이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노동(자)의 자본’이다. 내 노후를 위해 맡겨둔 나의 돈이 불법·탈법 행위를 일삼거나 사회적으로 유해한 업종의 기업에 투자되는 건 아닌지 따져보는 일이야말로, 투자자 사회의 광풍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진전시킬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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