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후보자 본인에게 일생일대의 승부인 것은 당연하지만, 특정 세력에 속한 정치인들 누구에게나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시험대다. 아직까지도 정치활동이란 것이 교도소 담 위를 위태롭게 걷는 일인 한국에서는, 그 결과에 따라 어떤 정치인이 교도소 담장 바깥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안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선거는 정치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믿는 일반인의 삶에도 깊고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영향의 정도는 상대적이지만 선거 결과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기도 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당선은 수많은 이라크인과 미국 군인의 생사를 갈랐다. 어떤 성향의 정부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자살률에 차이가 있다는 통계는 또한 무엇을 보여주는가.
누가 집권하느냐, 얼마나 자살하느냐
선거는 내전을 대체한 제도다. 인류는 내전의 무자비한 과정을 문명화해 여론에 따라 권력의 향방을 정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처럼 선거의 본질이 어쩔 수 없이 내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에는 매우 실용적인 지혜가 담겨 있다. 무기가 아닌 언어와 이벤트로 표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선거전의 와중에서 권모술수와 흑색선전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심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던질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던지려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능하면 ‘진실과 공정’이라는 가치를 고수하려 한다. 그런데 정보가 부족하고 세심하게 판단할 여력이 없는 유권자는 너무나 자주 협잡꾼들의 술수에 넘어가 ‘신사·숙녀’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국민은 정치의 수준이 저열하다고 밤낮없이 푸념하지만 실제로는 협잡꾼들을 지도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신사·숙녀’들로 하여금 정치에 투신하는 것을 기피하게 만들고, 어렵게 투신한 경우에 그들을 파멸로 내몰았던 것에 대해 유권자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넉 달 남짓 남은 선거전이 달아오르며 정치세력들은 경쟁자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책 위주의 선거’를 해야 한다고 교과서에 적혀 있지만, 박빙의 승부는 동원되는 레토릭의 호소력이 너무나 자주 결정짓는다. 선거전에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정당하고도 필요한 비판’이라는 양화가 ‘부당하고도 불필요한 매도’라는 악화에 쫓긴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주술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를 차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만은 아니다. 인간적으로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수’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삶의 기회주의자이며, 이익이 된다면 어떤 극악한 수단도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과 다른 길을 걷는 ‘신사·숙녀’들을 혐오하며 아마추어라고 조롱한다. 이 사회는 그러한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 됨으로써 고결한 사람들을 멸종시켜왔다. 이번 대선에서마저도 증명되지 않는 흑색선전에 귀를 기울이고,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주술에 넘어간다면 이 나라에 당분간 희망은 없다.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동원할 수 있다고 믿는 기회주의자들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멋진 선거 결과를 보고 싶다.
조광희 변호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내일 가족 보러 간댔는데…” 22살의 꿈, 컨베이어벨트에 끼였다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국힘 외면하는 설 민심
이재명 vs 국힘 대선주자 초박빙…박근혜 탄핵 때와 다른 판세, 왜
윤석열 재판 최대 쟁점은 ‘그날의 지시’…수사 적법성도 다툴 듯
검찰, 윤석열 구속기소…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재판행
윤석열 구속기소에 시민단체 “다신 내란 획책 없도록 엄벌해야”
한반도 상공 ‘폭설 소용돌이’…설 연휴 30㎝ 쌓인다
검찰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기소…“혐의 입증할 증거 충분”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전도사 “빨갱이 잡으러 법원 침투”…‘전광훈 영향’ 광폭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