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는 아주 오래된 허깨비의 실체를 봤다. ‘안보’라는 이름의 허깨비다.
안보는 군의 절체절명의 사명인 줄 알았다. 술을 마시다가도 ‘안보 위기’라는 말만 들으면 확 깰 정도로 중대한 지상 임무인 줄 알았다. 그런데 6월10일 천안함 사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며 이런 환상이 싹 사라졌다. 천안함이 침몰한 날 밤, 육·해·공 3군을 지휘하는 합참의장은 만취해 한동안 지휘통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고 발생 시각과 원인 등에 대한 보고와 대처 과정에서 조작과 누락과 지연이 판을 쳤다. 영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을 편집·발표해 국민을 속이기도 했다. 군이 강조해온 안보란 게 과연 무엇인지 개념을 잡을 수가 없어진다.
안보는 이른바 보수 세력의 신줏단지인 줄 알았다. 안보에 해를 끼치는 세력에는 누구보다 단호한 게 그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군의 지리멸렬상에 대해 그들이 보이는 태도를 보며 이런 환상이 싹 사라졌다. “감사로 드러난 군의 이상(異常)”을 두고 “엄정한 인사로 바로잡으라”고만 한다.( 6월11일치 사설) “군의 총체적 기강 해이에 식은땀 날 지경”이라면서 주문하는 건 고작 “신속하고도 과감한 문책 인사”뿐이다.( 6월11일치 사설) 이른바 친북·좌파가 조성하는 ‘막연한’ 안보 위협에 대해선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퍼부으며 극약 처방을 찾던 그들이 정작 ‘실제적’ 안보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판명난 군에 대해선 너무나 차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안보라는 게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진다.
은 지난 5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나온 뒤 812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합조단의 발표 내용대로라면 군은 경계, 작전, 사후 수습 등 모든 측면에서 실패한 만큼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황식 감사원장이 이런 주장에 화답했다. 그는 6월11일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특위에 출석해 “문제가 드러난 군 지휘부 12명에 대해 군형법상 형사책임이 있어 국방부에 처벌 필요성을 검토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장까지 이런 판단을 했다면, 안보의 화신인 양 굴어온 군과 보수 세력의 저 뜨뜻미지근한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어진다. 더구나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날 특위에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을 시도하기까지 했다니, 이제 감사원 감사결과마저 미궁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더욱 확고해지는 생각은 더 이상 군을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808호 표지이야기에서 제안한 ‘군에 대한 민주 통제’가 더욱 절실해진다. 또한 군이 주도한 천안함 침몰사건 원인 조사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숱한 음모론을 되살리자는 말이 아니다. 어떤 선입견도 배제하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의문’이 제기될 때는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허깨비 안보에 씌어 참안보를 향한 발걸음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서 제기하는 새로운 문제도 그렇게 진실을 향해 내딛는 한 발자국에 해당한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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