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는 2010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과연 대한민국은 그리스와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를 넘어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 16강 달성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대표팀 구성이 중요하다. 과거와 출신에 상관없이 좋은 선수를 뽑아야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 과정을 보면 훌륭한 공격수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은 훌륭한 스트라이커의 전형을 보여줬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누구인가. 민주당 등 야당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는 ‘페인트 모션’의 달인이다.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막판까지 상대 골문 앞으로 다가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던 김 의장은 국회의장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으며 수비수를 속였다. 하지만 경기 막판 공이 자기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오자 마침내 그의 ‘야수 본색’이 드러났다. 상대 골문을 찢어버리는 강슛을 날려 승부를 결정지어버린 것. 한번 골맛을 본 ‘야수’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다음은 김 의장의 독무대. 자신이 직권상정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도 1월1일 새벽, 마치 호날두가 무회전 프리킥을 차듯 골문 안으로 차버렸다. 변화무쌍한 그의 프리킥 앞에서 골키퍼는 호랑나비춤을 추며 흐느적거려야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화려한 개인기로 ‘원맨쇼’를 보여주는 ‘스타일리스트’에 가깝다면, 플레이메이커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감독을 기쁘게 하는’ 선수다. 안 원내대표는 민주당과의 중원 싸움에서 정부의 역점 사업인 4대강 사업 예산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완승의 1등 공신이라는 평가다. 치밀한 경기 조율 능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이번 예산안 날치기 국면에서도 ‘예산안 연내 처리’라는 목표를 달성해냈다. 장신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공격수다. 이명박 감독 체제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라운드에 자주 나타나지 않아 ‘게으른 천재’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2009년 새롭게 팀 주장을 맡으며 활동량이 많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감독의 전폭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계로 꼽힐 수 있다. 주로 ‘받아먹는’ 플레이 스타일을 고집하는 정 대표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볼 배급’을 ‘김형오 국회의장의 강슛’으로 마무리하는 팀 컬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게임의 완급을 조절하지만, 벤치에서 전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상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명박 감독, 아니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이 즐겨 쓰는 전술은 ‘끼워넣기’다. ‘야한 비디오’를 빌려본 사람은 안다. 예술영화 두 편을 먼저 고른 뒤 ‘젖소○○’ 등 성인물은 가운데 살짝 끼워 건네면 얼마나 감쪽같은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사면’을 발표하기 직전 ‘원전 수출협상 타결’ 소식을 먼저 알리고, 사면으로 국민 여론이 험악해지자 곧바로 ‘용산 참사 타결’ 소식을 전하는 식이다.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도 비관적으로 볼 필요만은 없다. 새해 벽두 분명 큰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1월1일부터 시작되는 연휴, 즉 ‘뉴스 비수기’를 틈탄 날치기였다면, 그러면 그냥 조금 불행한 거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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