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의 후폭풍

등록 2009-07-30 16:35 수정 2020-05-03 04:25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지옥 같은 무더위의 복날, 퇴근 시간 직전. 한 무리의 사무실 직원들이 빌빌거리는 에어컨 바람에 기댄 채 회의에 들어간 팀장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팀장. 침울한 표정으로 보아 아무래도 야근은 당연지사. 팀장이 말한다. “복날인데 저녁은 뭐 먹을까?” 뭔들 소화가 되겠나? 그때 철없는 아르바이트생이 노랠 부른다. “영계백숙~ 오오오오~.” 그러자 침울해 있던 직원들의 온몸이 동시에 흥겹게 떨리는 현상이…. “영계백숙~ 오오오오~.”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의 후폭풍이 굉장하다. 후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번성 속에 비리비리한 나날을 이어가던 의 여섯 남자들이 이번 한 번으로 완전히 기를 펴게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이름, 터무니없는 가창력, 부실한 댄스 실력으로 무대에 오른 것만 해도 배꼽을 잡기에 충분했는데, 국내 최고의 실력파 뮤지션들과 함께한 중독성 있는 노래는 이 답답한 날씨와 시대를 통쾌하게 꿰뚫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름은 코믹 발랄한 댄스가수들의 대목 시즌이다. 잠깐만 떠올려도 클론의 , 쿨의 , DJ D.O.C.의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몰려온다. 상쾌한 리듬과 멜로디, 따라 하기 좋은 안무, 거기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코믹 터치는 이 인기곡들의 필수 요소다. 팀의 자학성 저질 이미지가 여기에 겹쳐지면서 누구든 마음을 열고 만날 수 있는 여름의 즐길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마도 최고의 인기곡은 ‘명카 드라이브’의 . 무표정한 얼굴의 소녀 제시카와 버럭 호통의 아저씨 박명수의 대조부터가 훌륭한데, 이들이 노래 부를 때만 급발랄해지는 모습의 아이러니도 좋다. 게다가 가사조차 그들의 캐릭터를 재현하며 소녀시대와 놀아보고 싶은 삼촌들의 욕망을 대변해주다니. “헤이야 헤이야 화이아 화이아 오 아가씨/ 시간 있어?/ 오빠 믿지?” 무슨 씨알도 안 먹히는 작업이냐? 소녀의 대답은 당연히, “예아 예아 워닝 워닝 노! 노!”.

코믹한 중독성이라면 “그 튼튼한 다리를 믿어, 그 거칠은 피부를 믿어”의 . 특히 그 핵심 소절만 이용한 인터넷 패러디가 또 다른 웃음을 준다. ‘노바디 버전’ ‘동방신기 버전’들이 네티즌들의 놀라운 재능을 증명해주는데, 개인적으로는 육감적인 근육질의 다리를 출렁이는 비욘세 버전의 싱크로율이 제일 높은 듯하다.

어떻게 보면 음치·몸치·박치에 가까운 멤버들에게 최고 실력의 뮤지션들을 갖다 붙여준 것 자체가 가장 큰 코미디인 것 같다. 그런데 방송 때의 라이브와는 달리 녹음으로 나온 음반 버전은 제법 들을 만하다. 웬만하면 가수로 데뷔해 싱글 음반을 내놓는 요즘 연예인들의 진짜 실력을 가늠해볼 계기가 되는 듯도 하다. 어쨌든 개그로 보았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노래는 부조리 개그송의 절정인 ‘삼자돼면’의 다. “마더 파더 기브미 어 원달러/ 엄마 아빠 1200원 주세요/ 엘니뇨 라니뇨 WTO.” 이 부분만 들으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이명석 저술업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