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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언니들의 ‘당연하지’ 놀이

등록 2009-04-14 06:00 수정 2020-05-02 19:25
세계적 동영상 커뮤니티 ‘유튜브’

세계적 동영상 커뮤니티 ‘유튜브’

이 정부의 ‘영어몰입 교육’이 제대로 돼가고 있다. 정부가 구글에 ‘실명제’를 들먹인 덕분에 한국인들이 세계적 동영상 커뮤니티인 ‘유튜브’에 한국말 사용자로서는 게시물을 올리지 못하게 됐다. 이제 한국 네티즌의 갈 길은 하나다. 구글 세상에서 국적을 포기하고 자신의 회원정보 중 ‘지역’을 월드와이드(Worldwide·전세계)로 ‘언어’는 잉글리시(English)로 수정하는 거다. 어차피 우리, 영어 공부도 ‘빡세게’ 하는데 인터넷에서 영어 쓰는 ‘세계 시민’으로 살아간들 어떠하리. 그렇다고 한국말 게시물을 못 보는 것도 아니요, 한국말로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으니. ‘저희는 평소 저희가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우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유튜브 공식 블로그의 알림 내용을 보며 눈물이 나는 것은 내 나라인 한국을 내 나라라고 말하지 못하게 돼서인지,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게 돼 기뻐서인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월드와이드’한 정부와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의 아이디도 ‘월드와이드’해져야 함은 명백하다.

‘언니’들이 강도 높은 ‘당연하지’ 놀이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에서 민가협 상임의장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며 몸져 누웠던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4월4일 ‘전여옥을 지지하는 모임’ 대전·충청지부 발대식에 참석했다. 다음날 전 의원은 그를 만나기 위해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한 방송사 리포터에게 “이 사회에서 폭력이 없어지도록 해야죠. 당하는 건 언제나 여성, 어린이 같은 약자들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하지. 그가 여성의 이름으로 ‘약자’가 되어 폭력을 이야기하다니, 이상하게 당연하고 당연해서 이상하다. “사생활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남의 사생활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서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되죠.”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일보 ○사장을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언급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에 대해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4월9일 밤 문화방송 에서 한 말이다. 일단 당연하지, 사생활 들춰서 명예훼손하면 안 되지. 그런데 언론사 사주가 신인 탤런트 불러다 성접대 받았다면 그게 ‘사생활’인가? 리스트에 오른 남자들의 ‘사생활’에 ‘장자연들’이 죽어가도 ‘사생활’이니까 보호해야 한다고? 앗, ‘당연하지’ 놀이에서 이렇게 구시렁거리는 것은 규칙 위반인데…. 여기 ‘게임의 제왕’이 있으니 만나보자.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도 당연한 말만 하시어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당연하지”라 말하고 입을 다물게 된다. 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직후의 ‘그분’ 말씀이다. “안타까운 일이죠, 안타까운 일이에요.”(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당연하지.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내 위에 있다. 봄을 간주점프 한 듯, 4월 초반이 초여름 날씨였다. 피부보호를 위해 썬크림을 얼굴에 듬뿍 바른 뒤, 번들거림을 눌러줄 파우더 뚜껑을 열다가 순간 멈칫. 혹시 이거 ‘석면 탈크’ 들어있는 파우더 아냐? 지난 4월6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석면 함유 우려 화장품 리스트를 발표했다. 유명 회사 화장품이 포함되어 있단 소문에 여럿 쫄았으나 목록엔 1개 화장품 회사의 5개 품목 뿐이었다. ‘석면 리스트’도 불안함만 남긴 채 이렇게 지나간다. 하긴 ‘멜라민 과자’나 ‘게보린 혈액질환 부작용 우려’와 같은 충격적 소식이 잇달았어도 요즘 우린, 별일 없이 산다. 유해물질이 싫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유해물질은 내 ‘위’에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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