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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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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중년이여, 욕망을 디톡스하라

중년에 접어들면 탐닉 대신 절제 통해 삶의 행복을 찾아야… 고대 그리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의 혜안
등록 2024-04-26 16:11 수정 2024-04-30 16:35
로마의 정치가 킨키나투스는 로마에 적이 쳐들어와 독재관으로 임명됐지만, 적들을 물리치곤 깨끗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위키미디어

로마의 정치가 킨키나투스는 로마에 적이 쳐들어와 독재관으로 임명됐지만, 적들을 물리치곤 깨끗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위키미디어


로마의 정치가 킨키나투스(Lucius Cincinnatus, 기원전 519~430년)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권력을 거머쥐었다. 외부의 적들이 힘을 합쳐 갑자기 로마에 쳐들어오자, 원로원이 군대와 행정조직을 전적으로 통솔하는 독재관으로 그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은퇴하고 농사짓던 킨키나투스는 조국의 부름에 바로 수도로 달려갔다. 그러곤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 적들을 물리치고 깨끗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두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음에도, 킨키나투스의 임기가 아직 6개월이나 남아 있음에도,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영원히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아 있는 이유다.

정점에서 내려올 줄 아는 지혜

절정의 순간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서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삶을 오롯하게 가꾸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끝 모를 욕심 탓에 헛헛함과 고독 속에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 정신을 대표했던 나폴레옹은 또 어떤가. 마지막에는 권력 욕심에 휩싸인 독재자가 되어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젊은 날의 야망은 삶의 에너지다. 반면 중년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망은 몰락의 씨앗이 된다. 용케 이럴 운명에서 벗어났다 해도, 길들지 못한 야망은 결국 노년에 이르러 추한 노욕(老慾)이 돼버릴 터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 ?~135년)는 “늘 연회에 참석한 듯 살라”고 충고한다. 맛있는 음식 접시가 왔다고 해서, 이를 계속 내 앞에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도 즐기도록 얼른 요리를 넘겨줘야 한다. 삶에서 내가 누리는 기회도 그렇다. 때가 되면 다른 이들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 인생 후반기, 품격 있고 존경받는 일상을 꾸리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물론 내 경력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중년은 야망은 다스리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도록 욕구는 디톡스(detox)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년)는 중년에 큰 혜안을 안긴다. 그는 쾌락을 세 가지로 나눈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즐거움’, 마지막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즐거움’이다.

우리는 목마를 때 물을 마시고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며 졸릴 때 잠잔다. 이는 ‘자연스럽고도 필수적인 쾌락’이다. 한편 우리는 허기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푸짐하게 먹고, 졸음과 피곤함을 없애는 정도를 넘어 더 멋진 곳에서 자고 싶어 한다. 이는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쾌락’이다. 우리 본능이 바라지만 없어도 되는 즐거움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즐거움’이 있다.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욕구,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한껏 존경받고 싶은 욕망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잃을 것이 많으면 두려움도 많다

쾌락 전문가인 에피쿠로스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 정도에 머물도록 욕구를 끊임없이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왜 그럴까? 바라는 바가 적을수록 행복을 누릴 가능성이 커지는 덕분이다.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빵과 물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았다. 그리스 식탁에서 필수품이었던 포도주조차 ‘(하루에) 4분의 1리터로 만족했으며, 그 밖에는 물만 마셨다’고 한다.

반면,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즐거움’에 접어들면 욕망의 고삐가 이내 풀려버린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용없다. 우리 혀는 이내 더 맛나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바라게 될 테다. 집이나 지위는 또 어떻던가. 아무리 좋은 것을 갖고 있다고 해도, 나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것을 누리는 이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 그래서 마음은 비교 탓에 생긴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에 머물도록 충고한다. 위키미디어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에 머물도록 충고한다. 위키미디어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즐거움’은 최악이다. 높은 명성을 누리고 권력을 한껏 움켜쥐었다고 해보자.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는 순간은 짜릿하고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은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하다. “저 사람은 나를 진짜 좋아할까, 내가 가진 권력을 이용하고 싶어 나에게 잘 보일 뿐인가?” “내게 돈이 없어도 저이는 나를 따를까?” 등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부와 권력, 인기는 바람과 같다. 언제든 내게서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것들로 자신의 가치나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은 늘 피곤과 불안에 찌들어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불행하다.

중년에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즐거움’을 멀리해야 한다. 지치고 힘 빠진 야수를 둘러싼 들개들처럼 노리는 이가 많다. 그들은 내게서 결국 이를 빼앗아갈 것이다. 그러니 곧 사라질 것에 애면글면하지 말라. 이제는 자신을 다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만으로도 일상이 충분하도록 단련할 때다. 잃을 것이 많은 자는 두려움도 많다. 잃을 게 별로 없는 이들, 적게 갖고도 충분히 삶을 꾸리는 자들은 세상이 별로 무섭지 않다. 설사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충격이 별로 없어서다.

삶의 후반기, 당신 곁엔 어떤 사람이 있는가

인생 전반기에는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려 아득바득했다. 이 또한 좋은 삶의 자세였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많았던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생 후반전이다. 삶의 후반기에는 성장보다 성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년의 매력은 청년과 싸워서 이기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을 이겨봤자 분노와 원망의 눈초리만 돌아올 뿐이다. 중년의 아름다움은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 침착함에 있다. 이런 담담한 태도는 뒤따라오는 이들에게는 믿음직한 안내자가 되고, 노쇠한 분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그러니 세상에 흔들리지 않도록 욕구를 다운사이징 하라.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 수준으로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정원 공동체’를 꾸렸다. 그는 수도 아테네를 벗어난 한적한 외곽에 정원을 꾸리고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살았다. 인간 두뇌는 변온동물과 같다. 주변 사람들이 삿된 욕망과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내 안의 욕심도 한껏 달아오른다. 한편, 검소하게 살며 따뜻한 배려로 가득한 사람과 함께하는 경우는 어떻던가? 템플스테이나 피정 때의 마음가짐을 생각해보라. 저절로 안온해지며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년기의 성장 과업을 ‘좋은 관계 가꾸기’에 둬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명품백을 사고 고급 차를 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들은 내가 어떻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리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이들, 내 욕망을 채워줄 자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쾌락’과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쾌락’으로 휩쓸려버린다. 나를 나 자체로 받아들이고 보듬는 이가 많을 때 내 일상은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난다.

중년의 나는 좋은 관계를 가꾸는 데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을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정과 사랑(philia)은 춤추며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행복하게 살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우리는 노후 자금과 사회적 품위를 갖추기 위해 애쓰는 만큼이나 좋은 친구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사색 통해 내려놓기의 기술 배워야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말에 모두 공감한다 해도, 일상에서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건강한 식습관의 중요함을 안다 해도, 우리 혀는 여전히 ‘단짠기’(달고 짜고 기름진 맛)에 끌리지 않던가.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사색을 통해 절제하는 삶의 자세를 거듭 강조한다.

“우리가 검소함을 중히 여기는 까닭은 언제나 값싼 음식만 먹기 위함이 아니다. 음식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병에 걸려 열이 나는 사람들은 가장 해로운 것에 목말라하며 그것을 마시려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은 탐욕에 따라 계속 변하는 욕망 속에 빠져 지낸다.”

중년인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출세하고 재산을 더 늘릴까?”라는 질문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인생 후반기에는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물음이 삶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에피쿠로스는 ‘몸에 고통 없음’(아포니아·Aphonia)과 ‘혼란함이 없는 마음 상태’(아타락시아·Ataraxia)를 행복이라 봤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삶은 언제나 불안하다. 욕심을 줄여 필요한 것이 적도록 일상을 다듬어보자. 킨키나투스가 로마를 구원할 수 있었던 까닭은 헛된 야욕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영혼을 지옥으로 만드는 삿되고 헛헛한 욕망에서 벗어나라. 중년의 성장 과업은 이것이어야 한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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