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났지만, 달아날 곳이 없었다.
달아난 곳이 아프리카 열대우림이 아니라, 대구 달성공원 산책로였다.
2023년 8월11일 오전 9시11분, 사육사가 우리를 청소하는 도중 열린 문틈으로 침팬지 두 마리가 달아났다. 스물다섯 살 수컷 루디와 서른여섯 살 암컷 알렉스였다. 알렉스는 20분 만에 사육사를 따라 우리 안으로 돌아왔다. 공원 밖으로 나가려던 루디는 10시40분에 마취총을 맞고 기절했다. 의식을 되찾지 못한 루디는 3시간 뒤 질식사했다. 침팬지 평균수명의 절반을 살고 떠났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는 1.2% 남짓. 인간 남성과 여성의 유전자 차이가 1% 남짓임을 감안하면, 사람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래서 침팬지를 원숭이로 분류하지 않고, 보노보 등과 더불어 인간과 흡사하다는 뜻의 ‘유인원’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얼마나 높은 1.2%의 벽인가. 그 벽은 흔히 말하는 넘사벽,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에 가깝다. 많은 연구자가 그 장벽을 넘어보려고 ‘동물인간화’ 실험에 나섰다. 1960년대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와쇼’는 4년 동안 130개 넘는 단어를 배우고 수화를 익힌 첫 침팬지였다. 1973년 미국 오클라호마 영장류연구소에서 태어난 아기 침팬지는 강제로 어미와 떨어진 뒤 사람의 집에 맡겨져 사람 아이처럼 길러졌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허버트 테라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이 침팬지의 성장을 관찰하고 언어교육을 관장했다. 이름을 ‘님 침스키’라 지었다. “언어는 인간만의 타고난 능력이며, 동물에게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날개 없는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를 비웃는 이름이었다.
침스키는 놀라운 학습능력을 보이며 유인원 교육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야생성이 드러났다. 다 큰 침팬지의 손힘은 성인 남성의 세 배에 이른다. 날카롭고 커다란 송곳니는 치명적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식처럼 침팬지를 키웠던 스테파니의 가정은 깊은 상처를 입고 혼돈에 빠졌다. 언어학습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허버트 박사는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침스키를 오클라호마 연구소로 돌려보낸다. 사람 품에서만 자랐던 침스키는 침팬지들을 보자 공포에 휩싸였다. 그를 기다리는 건 철창에 갇힌 슬픔과 고립의 나날이었다. 사람들의 사정에 따라 이 연구소 저 실험장으로 끌려다녀야 했고, 스물여섯 살에 죽음을 맞았다. 그의 이야기는 2008년 출간된 책 <님 침스키: 인간이 되려던 침팬지>를 통해 알려졌고, 2011년 다큐멘터리영화 <프로젝트 님>으로 제작됐다.
루디와 침스키, 둘 사이에 어떤 강이 흐를까. 사람의 아이로 자랐지만 침팬지였다. 침팬지 새끼로 자랐지만, 사람의 노리개였다. 사람은, 이미 사람, 여전히 사람인데도 서로에게 ‘먼저 인간이 되어라’는 웃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루디와 침스키가 정말 말할 줄 알았다면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던졌을까. 아무쪼록 너희의 송곳니에 물린 듯 아픈 말이기를.
미안해 루디, 부디 편히 쉬기를.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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