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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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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어디 있소

등록 2024-11-08 20:27 수정 2024-11-14 17:06
섬에서 너를 만났지. 흑산도를 헤매다가 마주친 거야. 조선시대 ‘물고기 사전’을 쓴 정약전은 ‘흑산’이란 이름이 컴컴하고 두렵다며 ‘자산’이라 바꿔 썼다지. 넌 오랜 세월 사람의 가족, 노예, 돈, 고기였어. 다른 의미의 ‘자산’이었던 셈이지. 12년이 흘렀어. 어느새 고기와 가죽으로 사람 곁에 왔겠구나. 아닐 수도 있겠지만. 2012년 전남 흑산도.

섬에서 너를 만났지. 흑산도를 헤매다가 마주친 거야. 조선시대 ‘물고기 사전’을 쓴 정약전은 ‘흑산’이란 이름이 컴컴하고 두렵다며 ‘자산’이라 바꿔 썼다지. 넌 오랜 세월 사람의 가족, 노예, 돈, 고기였어. 다른 의미의 ‘자산’이었던 셈이지. 12년이 흘렀어. 어느새 고기와 가죽으로 사람 곁에 왔겠구나. 아닐 수도 있겠지만. 2012년 전남 흑산도.


거의 모든 동물에게 ‘본다’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돼 있다. 잡아먹기 위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사람은 살짝 다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시각은 생존과 연결되지만, 우리는 즐기기 위해서도 본다. 타고난 구경꾼이다. 단지 구경하기 위해 대단히 많은 자원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살기 위해 보는 건지, 보기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보려다가 잃는 목숨’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 검색창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을 입력하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 답이 뜬다. 그것을 정말 재미있는 구경이라 불러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지만, ‘불멍’과 ‘싸움멍’이 우리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사람은, 사람과 싸우며, 동물과 싸우고, 동물끼리 싸우도록 부추긴다. 그것을 일상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윤리적 부담감을 덜어내는 동시에 수익까지 창출하기 위해 ‘규칙’을 도입했다. 규칙에 따른 싸움은 합법의 그늘 아래 스포츠가 되고, 민속이 되며, 투자가 된다.

경상북도 청도군은 둥글납작한 감 ‘반시’와 미나리로 유명한 지역이다. 소싸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세월 민속놀이라는 이름 아래 소싸움 축제가 열렸고, 상설경기장까지 갖추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됐다.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절차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난관에 부닥쳤다. 동물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소싸움 폐지 전국행동’에 나서는 한편, 국민 여론조사 결과 또한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도군은 2025년 축제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청도군의 자랑이 또 있다. 새마을운동이다. 1969년 여름, 대홍수가 한반도를 덮쳤다. 집과 사람이 떠내려가고, 소·돼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명 피해가 699명, 재산 손실이 295억원에 달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전용열차를 타고 피해가 큰 경상남도로 향했다. 달리던 중 갑자기 기차를 세운 곳이 청도군 신도리였다.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수해 복구하는 흐뭇한 모습이 각하의 눈에 박힌 것이다. 이듬해 새마을운동이라는 국민 개조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청도는 새마을운동 발상지라는 명예를 안았다.

신도리 마을공원에는 각하의 동상과 전용열차가 재현돼 있고 정치의 계절마다 부나방이 모여든다. 번듯한 발상지기념관엔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나아갈 방향이 펼쳐져 있다. 내 눈을 붙든 건 오래된 월간 ‘새마을’ 표지였다. 표지모델로 가장 많이 나온 동물은 소였다.(가장 많이 나온 사람은 뻔하게도 각하였다.) 커다란 황소 여덟 마리가 사람들과 나룻배를 타고 얼음강을 건너는 1973년 1월호 표지는 특히 인상적이다. 오랜 세월 소는 농촌의 노동력과 경제력을 뒷받침하는 기둥이었다. 가족이자 노예였고, 돈이자 음식이었다. 시골 어딜 가나 소가 있었다. 아침이면 가마솥에 여물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요즘은 소를 보기 힘들다. ‘그 시절’보다 사육 마릿수는 늘었다는데, 만나기가 어렵다. 어느새 소는 우유와 고기로만 익숙한 동물이 됐다. 동물은 보이지 않고, 가공제품이 동물 이름표를 달고 대문을 두드린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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